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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부안 22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설길을 걸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푹신푹신한 눈길이 생겼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 서해랑길을 따라 걸었다. 비탈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눈 위에 선명히 새겨진 발자국들, 바닥에 펼쳐진 지도였다. 발자국은 도보여행자의 배려였다. 길 잃을 걱정 없이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울창한 대나무숲을 지나 절벽 위를 걸었다. 길이 좁고, 좌측은 바로 낭떠러지였다. 조심했다. 미끌미끌한 길을 힘주어 걸으니 무릎이 욱신거렸다.


국립변산자연휴양림에서 잠시 쉬었다. 그 사이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이상했다. 점점 눈발이 거세지고 주위는 눈으로 뒤덮였다. 겨울 왕국으로 납치당했다. 설국 여행. 뜻하지 않게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도보여행의 묘미일까?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Yes!!"


겨울 왕국 자매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눈사람이 나일 줄은 정말 몰랐다.


머리부터 얼굴, 다리까지 흰색으로 칠해졌다. 눈사람이 될 때까지 눈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는 착해 보였는데, 직접 보니 장난 없었다.


"꺄르르!"


얼마나 재밌는지 눈을 더 퍼부었다. 체념했다. 언제 또 이렇게 눈을 맞을 수 있을까. 기대하던 눈이었으니 추억을 선물해 준 자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눈사람 만들기가 드디어 끝났다. 설국 공주들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을 밝아졌다. 그리고 따뜻하게 햇볕이 내리쬤다. 깨끗한 하늘 아래서 걸었다. 마지막 배려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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