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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논산->부여 23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스텝덕과 함께 부여로 향했다. 뿌연 안개가 생겼다. 높은 하늘은 푸르고, 아래는 흐린 신비한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는 직선을 걸었다. 한없이 긴 직선은 앞만을 바라보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앞만을 말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텝덕은 진중하게 듣고 본인 생각을 전달했다. 다시 나타난 직선 코스에 말은 사라졌다. 하염없이 앞만 볼 뿐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문득 걷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 난 왜 걷기를 하는 걸까? 걸으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데 말이야"


그런 거 아닐까요?
진짜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하게 되는 거죠.
해야 할 운명인 것처럼



대답은 본능적으로 단번에 나왔다.


모든 것에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거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이유에 사로잡혀 본질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무성의하고 생각 없이 비친다고 느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가 얼마나 진지한지가 보였다. 무심히 툭 놓은 대답은 멋져 보였다.


"나는 왜 사는가"
"그냥"
"나는 왜 걷는가"
"그냥"


그냥이라는 단순한 대답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그리고 깨달은 거다. 이유 따윈 아무렴 상관없다는 걸. 왜 사냐고, 그냥 사니까 살지. 신이 우리에게 사명을 줬나? 세상 사는 게, 무언가를 하는 게, 다 제 맘이다.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된다. 그냥 하면 된다. 이유가 없으니 하기 싫어지면 안 하면 된다. “왜 한다고 했는데 안 해?”라고 물으면 답해주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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