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101 부여->보령 34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홍산면 마을을 나와 국도로 들어섰다. 전방 100m 거리에서 공사장을 발견했다. 인부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서해 따라 올라가는 중이에요!"

"좀 전에 해남으로 내려가는 2명도 만났는데”


아저씨는 나처럼 도보여행자를 봤다고 했다. 숙소에서 일찍 나왔다면 그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한 시간 전의 게으른 내가 미웠다.


보령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대덕 1리 정류장을 발견하고 잠시 쉬었다.


"버스 언제 와요? 왔어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서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난 또 버스 타는 줄 알았네, 에구구"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길로 걸어 올라갔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출발했다.


한가로웠다. 마음은 붕 떠서 날아갈 듯 가벼웠다. 너무 편안해서였을까, 어제 생각했던 '여행경비'가 떠올랐다. 한쪽이 가벼우면, 한쪽이 무거워지는, 인생은 참으로 공평했다. 경비를 생각하면 후회가 살짝 들었다. 이 돈이면 해외여행 몇 개국은 다녀왔을 텐데. 후회와 만족이 시소에 올라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이미 돈은 써버려 사라졌는데, 후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음을 다잡았다.


흘러가도록 놔두자
거스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흘러가도록 놔두자


흘러간 것에 이유를 찾고, 후회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겠지만, 그 시간이 잘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그저 하려는 것에 집중하고 해 나갈 뿐이다. 흘러가는 삶에 대한 동경은 여기서 시작됐다.


‘흘러가는 대로’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굉장히 무책임하고 진지하지 못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 싶다. 그럼에도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지 다짐하지 않을 것이다. 흘러가는 삶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삶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면 나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생겨난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삶은 얼마나 재밌겠는가.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최선이라 생각하는 노력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럼 흘러간 순간들이 모여 나를 종착지로 데려다줄 것이다. 종착지에 다다랐다면 헛된 시간이 아니게 된다.


나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목적지를 정확히 말해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아직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끝까지 그의 걸음을 안내하는 것은 ‘운명'이지, 결코 한 과제의 성취가 아니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


해남으로 향할 때와는 반대로 대천해수욕장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중간에 '죽도'라는 섬이 보였다. 서해바다를 보며 걸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이곳을 다시 걸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이전에 묵었던 곳이 있었다. '해동게스트하우스'.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만 예약이 가능했다. 따뜻한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자,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 먹었던 고기 맛을 어떻게 잊겠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