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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2 보령->태안 23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오늘 큰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6km가 넘는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도보와 이륜차가 금지된 표지판을 보고 지나쳤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삥 둘러 태안으로 가긴 싫으니 무법자가 될 수밖에. 터널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안전 펜스가 있었다. 약 1km를 걷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괜히 아쉬웠다. 그리고 ‘좀 봐주지 깐깐하게’라며 정직한 공직자들이 미웠다. 도로교통공단 차량이 옆에 섰다.


"차 타세요! 여기 지나가면 안 돼요~"


슬기로운 도보여행자 무법생활이 끝났다. 선임으로 보이는 직원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어디 가시려고 지나는 중이었어요? 앞에 도보 금지 표지판 못 보셨어요?"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혹여나 불이익을 당할지 싶었다. 다행히 마음을 고쳐먹고 사실대로 말했다.


"네. 보긴 했는데, 펜스가 있어서 안전할 줄 알았어요."


대답을 들은 직원은 웃으며 답했다.


오늘 운수 대통한 거예요. 경찰이었으면 바로 잡혀갔어요! 벌금도 내고


그랬다. 자동차전용도로나 도보금지도로를 무단으로 지나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금 및 징역에 처할 수 있었다. 운수 좋은 날. 터널을 빠져나오고 차에서 내렸다. 공단 직원들 덕분에 안전하게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원산대교를 통해 원산도를 지나왔다. 대교를 지날 때면 바다 위에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시원했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피부로 느끼는 감각은 삶의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샛별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시골길이었다.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틀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시골길에 이 노래만 한 것이 없었다.


당신은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나요?
세바시 인생질문 2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바라봤다. 푸른 바닷속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질퍽질퍽한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이 살았다. 쓰레기도 함께였다. 사람도 그러했다.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아름다운 면과 숨기고 싶은 면이 공존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기 전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이고 있을까라는 고민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지 싶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스스로 되고 싶은 모습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너도나도 가면을 썼다. 서로가 숨기기 바쁜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란 힘들었다. 들키기 싫은 소망이야 나도 그런 사람이니 이해 갔다. 그럼 질문을 달리해야 했다.


"어째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는가?"


어쩌면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명확히 보이는 정답이 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 '인기 많은 조건'처럼 알기 쉽게 그려진 인간상 말이다. 이렇지 않은 자신을 보면 괜히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더 나아가 나를 알아가는 시도조차 포기한다.


"정답이 나와있는데, 뭣하러 머리 아프게 고민해"


그렇지만 아마 우린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은 불편할 뿐이란 걸. 그리고 충분히 알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즐거울 때가 언제인지를. 눈치 따윈 내려놓고, 가식 따윈 던져놓고, 있는 그대로를 보였을 때. 상대방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의 행동에 의도를 찾고, 좋고 싫음을 따질 때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자. 긴장되고 불편하고, 괜스레 머리부터 아파온다. 그냥 바라보면 편안하다. 가장 쉽게 생각할 때 답이 보인다. 쉽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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