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100일이었다. 99일에 부서진 삼각대를 만났고, 100일째엔 고장 난 이어폰과 마주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가이 쌓이면, 가장 가까운 것부터 하나둘 망가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몸은 멀쩡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낙화암으로 향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부소산성을 통해 출입해 주세요.] 분명히 보였던 안내문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가끔은 ‘괜찮겠지’라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폐쇄된 길이라도 어딘가로는 이어지리라 믿고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길은 곧 말해줬다. 잘못 들어섰다고.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외길은 점점 좁아졌다. 두려움이 차올랐고, 결국 돌아서기로 했다. 괜찮을 거라 여긴 선택은 그리 괜찮지 않았다. 출입구로 돌아가 경고문을 다시 확인했다.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부소산성을 통해 출입해 주세요. 2016.]
7년 전에 세워진 경고문이었다. 익숙한 말이 떠올랐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돌다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두드려보며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기보단, 멈추고 돌아볼 용기가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구드래나루터를 지나쳐, 백마강을 따라 걸었다. 나룻배가 손님들을 태우고, 백마강 물살을 유연하게 갈랐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기를 반복했다. 상쾌한 공기, 차갑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봄이 일찍 찾아온 듯 착각을 하게 된다. 가을 끝자락을 지나, 겨울을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홍산면 초입에서 구멍슈퍼를 발견했다. 왠지 모를 끌림에 문을 열었다. 그곳은 슈퍼가 아니라 핸드드립 카페였다. 간판조차 눈에 띄지 않고, 내부도 어딘지 정돈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 속에서 오히려 단단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마치 ‘나, 카페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고요한 자존감처럼. 조금만 서두르면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멈춰 서서 들여다보면, 그 속엔 누군가의 이야기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요즘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려 애쓴다. 더 크고, 더 강렬하게, 더 또렷하게. 하지만 이곳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숨길 때 아름다움이란 더 빛을 발한다고.
100일이었다. 나는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고 느꼈다. 이 살아있음이란 하나의 감각이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와 마주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 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 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 준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존재들을 아무 불편함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결합하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
라고 루소는 말했다. 길은 걷는 행위만 허용되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사색하고, 경험하고, 발견하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곳이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그것들과 마주하고 인정할 때 ‘나'를 조금씩 알게 된다. 여러분은 세상이 규정한 ‘나'의 거짓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부를 때 기분 나쁜 메스꺼움을 느끼리라. 감싸던 모든 게 사라지고 발가벗겨질 때, 부끄러움보단 기쁠 것이다. 그것이 ‘나'고,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