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오늘은 거리가 짧은 날이어서 다행이었다. 몸이 편해서 그런가, 마음도 가벼워지더니 유혹에 쉽게 빠진 날이기도 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 풍경이 보이더니, 도시가 다시 보였다. 화성 향남읍에 있는 홈플러스에 들어갔다. 눈을 요리조리 굴리느라 아플 정도였다. 종류도 종류였지만, 가격이 무척 합리적이었다. 싼 가격에 악마가 속삭였다.
‘이걸 안 사?’
안 사는 게 죄였다.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아주 답답하고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안절부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동안 벌써 사서 나갔을 정도였다. 나는 빵 두 개를 집었다. 요란법석하며 고민한 결과였다. 이 깜찍하고 귀여운 남자 같으니라고. 이제 계산을 하면 되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어?! 핸드폰이 어디 갔지?"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져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쇼핑을 하기 전 화장실에 들렀던 기억이 있어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그대로 있는 휴대폰을 보고 안심했다. 가방을 다시 메는 중에 휴대폰을 휴지 박스 위에 올려놓고 나왔던 것이었다. 다시 셀프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율암온천에 위치한 숙소로 출발했다. 숙소는 율암온천 바로 옆이었다. 드라이브 무인텔은 1실 1주차를 할 수 있다. 자동차가 들어가는 거대한 문으로 들어간 뒤, 계단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자동차와 같은 거리를 지나 온 다리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바시 인생질문 3 :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어릴 적 글쓰기는 꽤 귀찮았다. 학교에서 매일 써오라는 일기가 그랬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글짓기 상을 받고서 서서히 좋아졌다. 상은 아주 좋은 촉매제였다. 중학생 땐 게임 소설을 직접 쓰고, 조회수를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이걸 왜 읽지?’라고 의아하기도 했다. 이때 유료로 글을 올렸는데, 세금 문제(?)로 시청에 다녀오고선 글을 접었다. 부모님이 쓰지 말란다고 쓰지 않는 착한 어린이병 때문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글을 잊은 채 살았다.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군대였다. 분대장 시절, 병영생활 글짓기 대회에 입상을 해보겠다고 근무가 끝나면 짬짬이 글을 쓰곤 했다. 무슨 바람 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그것을 계기로 일기를 썼다. 전역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됐다. 내가 느끼는 감각대로, 쓰고 싶은 대로 썼다. 휘갈겼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글은 분출구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맞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글이란 것을 가볍게 써 내려가는 것이 맞을까?'
이 고민이 시작되면서 글쓰기는 재미없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글을 쓰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 미치겠으니 '그냥 쓰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게 글쓰기는 기록을 넘어 '나'를 써 내려가는 행위였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진지하면 진지한 대로 글에 남아 있다. 글을 읽다 보면 '그때의 나'가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는 내가 보였다. 참 재밌지 않나. 다시 글 쓰는 게 재밌어졌다. 뭘 쓸까? 어떻게 써볼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쓰기는 정말 잘한 일이었다. 글은 무한했다. 다양한 내가 창조되고, 수많은 감정이 담기며,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존재했다. 글을 쓰며 '나'를 더 이해하게 됐다. 글이 되기 위해선 나와의 대화가 필수였다.
"어떤 감정을 느꼈니?"
"여기선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좋은 이유가 뭐야?" 등-
질문과 대답이 연속적으로 오갔다. 나는 오늘도 '나'를 채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