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움직이는 바퀴는 있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다리는 없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었다. 안정을 버리고 선택한 전국일주였기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새로운 행위를 통해 얻는 경험이 필요했다. 여름만 되면 사람들은 강원도 양양에 미친다. 좀 놀 줄 알면 서핑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멋에 반해 나도 배워볼까 했지만, 겁이 많았다. 그리고 시간적, 금전적 이유를 들며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이젠 조급함이 무서움을 이겼다. 29살이 돼서야 서프보드를 손에 잡았다. 해녀와 같은 복장을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마음속엔 이미 파도가 수없이 일렁였다.
서핑은 바다의 정보를 알고 타야 안전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용어도 새로이 알게 됐다. 보드에 누워 물을 젓는 것은 '패들링', 파도를 잡아 일어서는 동작을 '테이크오프', 파도타기 좋은 위치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것은 '라인업'. 라인업을 할 때 이안류를 타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안류는 밀려왔던 파도가 다시 바다로 향하는 바닷물의 흐름이다. 물놀이할 때 이안류에 휩쓸리면 육지 쪽과 멀어져 위험하지만, 서핑할 때는 좋은 해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안전 수칙을 배우고 야외로 나갔다.
모래사장에서 패들링과 테이크오프 동작을 연습했다. 어색한 팔동작에 양옆에 구덩이만 커졌다. 내향형의 나는 굉장히 쑥스러웠는데, 빨리 위로부터의 낯뜨거운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물 위에서 실전 연습을 했다. 강사님이 파도에 맞춰 밀어줄 때 테이크오프를 했다. 유동적인 파도 위에서 자세를 잡으려니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 끝에 두 발이 제자리를 찾았다. 강습 시간이 끝나고 자유 서핑을 했다. 나 혼자였다. 서퍼가 좋아하는 파도도 없고, 여름이 아닌 가을 바다를 누가 찾으려 할까. 비주류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혼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금처럼 유유자적하게 이리로 저리로 떠다니기만 해도 괜찮을까.
퇴사를 결정하고 짊어진 ‘자유’는 무거웠다. 내 선택으로 얻은 산물이지만, 그것은 내 것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걱정을 기대로 바꿔야 했고, 무모함을 탁월함으로 바꿔야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은 이해시키고 인정받아야 도전이 아름답다고 손뼉 쳐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복잡한 생각은 던져버리고 그냥 바다나 둥둥 떠다니자.
처음 맞닿은 바다는 차가웠다. 여러 번 빠지며 물도 먹었다. 바다와의 노골적인 접촉에 바람이 심술 났는지 세게 불었다. 그러니 바다가 따뜻해졌다(오줌싼 거 아니다). 가까워지는 우리 사이를 바람도 어쩌지 못했다. 데이트를 더 즐기고 싶었는데, 체력이 한계였다.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내심 아쉬운지 파도를 철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