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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Sep 23. 2024

EP.17 고성 17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이상한 아침이었다. 평소의 아침은 쌀쌀함에 몸을 이리저리 꼬았었다. 일어나기 싫어 침낭 안에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따뜻했다. 분명 해변가에서 잤는데 따뜻했다. 벌떡 일어나 조심스레 지퍼를 열었다. 철썩이는 바다 소리와 함께 강렬한 햇빛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포근한 아침을 맞이했다. 기지개를 쭈욱 펴고 바다를 응시했다. 동해에 도착했다.


해파랑길을 따라 걸었다. 파란색으로 가득한 길은 마음의 불순물들을 깨끗이 씻겨주었다. 오로지 바다만을 가득 담을 수 있도록. 설렘이 둥둥 떠다니고, 낭만이 파도를 탔다. 걷는 순간순간마다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 길을 걷고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 시간, 바다는 잘 왔다며 반겨주었다. 항구에 들어서면 바다의 짠내가 더욱 짙어진다. 휴식을 취하는 고깃배부터 수많은 횟집들이 보였다. 새벽에 수많은 생선들이  팔려나갔을 경매장도 보였다. 싱싱한 생선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장터를 가득 채우는 소리들. 항구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
반암·가진·공현진 해수욕장을 지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송지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를 즐기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선 바다를 느꼈다. 이 추운 날씨에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자처하고 물에 발을 담갔다. 바닷물의 차가움은 뼛속 마디마디를 지나 온몸에 전해졌다.


진짜 바다에 왔구나, 나 여기까지 걸어온 거야. 대단하다.


<걷기의 인문학>에서 말한다.


‘홀로 시골길을 걷는 보행은 소박한 인간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회를 떠나 자연에 거하는 방법을 대표한다. 보행자는 한곳에 붙박인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여행자이지만, 말이나 배, 차량 등의 편의를 이용하는 대신 오직 맨몸으로 자기 체력에만 의지하는 여행자다’


시골길을 비탈길을 시멘트길을 걸어 동쪽 끝에 있다. 하루에 몇 번이고 찾아오는 벅차오름은 한계를 이겨내고자 노력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특전이었다. 걷기를 하며 느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에 한계를 설정하고 이겨내는 몫은 스스로에게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경험하지 않고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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