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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Oct 15. 2024

EP.20 양양 6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여행자에게 술과 사람은 고독을 없애는 명약이었다. 명약도 약인지라 과도하게 먹으면 중독되는데, 나는 어제 중독됐다. 새벽까지 흐트러진 정신을 부여잡고 놀았다. 내일의 나에게 도보여행자로서 역할을 맡겼다. 아침에 눈을 떴다.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켰다. 체크아웃이 11시까지라 부랴부랴 준비해야했다. 같은 방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숙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방을 나서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인사하고 마지막으로 나갔다.


술로 놀은 댓가는 가볍지 않았다. 바닷바람은 짠 내를 몰고 와 속을 뒤집어놨다.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 싶어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순두부찌개의 칼칼한 국물로 속을 풀었다. 가게에서 나와 낙산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술에 취하면 감정이 격해졌다가 잠잠해지는데 그 순간 나와 마주한다. 어젠 그럴 새가 없이 취했다. 정신을 차린 지금 나와 마주했다. 바다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냥 쉼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지쳐서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과연 “그래"라고 말해줄까? 먼저 나의 힘듦을 재려 할 거다. 그리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의 힘듦을 까 내리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엄살이 심해 이 정도로 힘들다고 느낄 수 있겠지. 그래서 유일한 방법은 합당한 ‘이유’뿐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게 말이 좋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땐 빛 좋은 개살구다. 만약 찾지 못하면 어떡할 것인가. 돈과 시간만 낭비한 거면 어떡할 것인가. 경험이 남는다고 말할 수 있다(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결국 힘들다고 버티지 못한 사회복지사로 다시 돌아오면 주위에선 어떻게 볼까. 난 그 시선이 무서웠다. 그래서 뭐라도 보여줘야 했다. 이렇게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할 순 없었다. 어제의 내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몸도 못 가눌 정도로 한심한 상태로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한심했다. 그리고 왜 내가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도 남들 눈치 보며 하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푹 쉬곤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지금 상태로는 오래 걸을 수 없었다. 시간도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어 거리를 길게 잡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하루 푹 쉬기로 했다. 대략 6km 거리에 있는 양양 시내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에 도착했다. 후회스러웠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외로움과는 멀어졌으니 말이다. 편하게 양양 시내를 돌아다녔다. 카페 가서 커피도 마시고, PC방에 가서 만들고 싶은 자료도 만들고, 먹고 싶은 치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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