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잘 보내려면 긍정 확언을 하라고 누군가 그랬다. 그래서 '오늘도 즐거운 일이 생길 거야'라는 긍정 확언을 정했는데, 하루 만에 깨졌다. 편안해진 육체는 정신을 지배했다. 확언을 새카맣게 잊었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은 굉장히 중요하다. 정신을 담는 그릇인 육체에 문제가 있다면, 건강한 정신이라도 과하여 넘치기 마련이다. 현재 육체 상태에 맞는 정신만 담기는데, 바로 그 상태가 ‘해이’다. 확언을 잊은 나는 “걸으면 분명 즐거울 텐데 무슨 확언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유롭게 뒹굴뒹굴하다 출발했다. 정동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양양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하면 제주도가 떠오른다. 해외에 대한 동경으로 가보고 싶었으나, 겁많은 내게 허락된 나라는 일본뿐이었다(이것도 동행자가 있어 용기 낼 수 있었다). 그 한 번의 여행을 끝으로 비행기는 제주도 갈 때만 탔다. 구경이나 해볼까는 마음에 제주도행 표를 검색했다. 오후 4시 비행기 표가 있었다. 즉흥이냐, 계획이냐, 무엇이 좋을지 고민에 빠졌다. 이 여행이 정기휴가로 떠난 여행이었다면 떠났겠지만, 돌아갈 회사가 없는 내게 경비는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경비와 일정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이때의 난 전국일주 이후의 생활비까지 남겨놔야 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계획이 확실해야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머리 위로 경쾌한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굉음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항 뒤쪽으로 지나가는 길은 기다란 직선도로였다. 왼편으로 콘크리트 벽이, 오른편으로 갈대가 나무와 부대끼고 있었다. 상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서로 만나려 하지만 도로가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길이 없었다면 서로 만났을까.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리고 자연을 받아들였을까 상상을 해봤다.
이 삶이란 건 복합적인 것일 텐데, 편견이란 도로가 꿈이냐 현실이냐를 상반된 존재로 갈라놓는 건 아닐지 싶었다.
몸이 무거운 하루였다. 머릿속은 ‘왜 걸을까?’라는 물음으로 가득 찼다. 물음이 이어질수록 해이함이 부표처럼 떠올랐다. “이러면 안 돼!” 단순히 전국일주가 하고 싶어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다. 앞으로가 중요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했다. 의무감이 생겨 걷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즐기는 마음은 한심하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다그쳤다.
너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어, 직장도 돈도 없다고!
해이해질 때마다 다그치는 강도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래야 이 길 끝에 뭐라도 남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