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필연
지난 글에 일기에 대하여 깊은 토론을 했다. 어찌 보면 일기는 일종의 역사이다. 개인의 역사인 셈이다. 흔히 알기를 역사는 국가적인 크기에 사건을 담고 있는 기록의 집합체로 이해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역사는 각각 시대의 정신 또는 철학 (흔히 말해 트렌드)을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만약 일기가 개개인의 대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전 세계적인, 특히 우리가 인류로서 잊지 말아야 할 사건과 이념을 글로 기록한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역사라는 ‘과목’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은 사람들이거나 실제로 미성숙한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출처가 불분명한 명언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특히 병역의 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성인 남성과 일부의 여성들이 많이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양에서도 나름 많이 알려져 있다고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됐다. 짧은 문구이지만 매우 굵은 의미를 가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문장이다.
어떠한 것을 배울 때, 학문으로든 개인적인 호기심으로든, 우리는 항상 대상의 과거를 중요시 여기고 있지 아니 한가 생각한다. 그럼 역사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역사는 많고 많은 인류의 실수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많은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었지만 현대에 와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대부분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적 기록들은 전쟁이다. 어느 국가가 어떠한 이유로 다른 국가를 침략하여 지배하거나 어느 누가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켜 국가 내에 내전이 일어나 국가를 지배하고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 등등 많고 많은 기록들 중에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 사건들의 기록들이 너무 많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비극이 꼭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느 국가들은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의 차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소수의 욕심 때문에, 정확히 말해 그 나라의 지도자들 개인의 욕심에 의해 일어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비극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왜 새의 침략과 갈등에서 이제는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 그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저 자신의 생각이 곧 진리라고 착각하고 있어서. 물론 역사가 비극적인 일들만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명언의 맥락을 짚어 보면 과거의 실수를 알아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혹은 “인간의 실수는 반복된다”는 말이 그저 단순히 만들어진 문구가 아니라 정말 현실에서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럼 인류는 역사를 굳이 배울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못 고칠 실수들이 반복되는 것이 인류의 본질이면 역사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매우 안타까운 현실인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이유로 역사를 더욱 깊이 배워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끔은 과거에 일들을 잊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잊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있을까?
역사는 본질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줘야 할 의무와 사명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과거의 기록을 무시하고 남용할수록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움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역사에 더욱 깊이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역사는 꼭 이렇게 무겁기만 한 학문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그 시대의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처럼 들려주고는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일상의 것들 또한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래된 기업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 생각나는 기업으로 미국의 애플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삼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전통이 곧 그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음식 또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있는 음식의 역사만 다 읽어봐도 일 년이 부족하다. 더 나아가 세계에 다른 음식들의 이야기만 읽어도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칵테일의 역사에 관한 짧은 영상을 보는 것을 즐긴다. 역사를 알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자주 보고는 한다. 대학교에서 미술 역사를 배울 때도 처음에는 학점과 졸업증을 위해 수업을 들었지만 미술 박물관을 다니게 되면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사가 직접 보이는 경험을 했다. 역사가 보이면 그 대상을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진가를 경험하고 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모든 역사를 깨우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렇듯 역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떠한 존재인지를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항상 궁금해 왔다. 고대시대 때부터 인류는 호기심이 많았다. 마치 우리가 내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듯이 항상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질문과 호기심을 고대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나름에 만족을 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그 종교의 형태나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인류는 아직도 배고프고 목마르다. 인류에 대해 알기 위해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선조들은 기록을 하기 시작하고 현대의 인류는 그 기록들을 통해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인류의 첫 기록들은 그저 기록으로만 남음이 아닌 하나의 예술로 승격했다고 미술 세계사는 평가하고 있다. 예술은 어느 현실을 비추는 시각적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인류의 첫 기록들은 동굴벽에 새겨진 시각적인 기록들이었다. 고대의 첫 문자들도 상형문자라고 하여 일종의 그림 같은 문자를 사용하여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해 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한글 또한 우리의 입과 성대를 본떠 만들어졌다. 고로 기록은 상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일 년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노먼 포스터 + 파트너스와 함께 주최한 전시회에서 노먼 포스터님이 한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노먼 포스터는 “건축가로서 본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과거에 대한 인식과 함께 현재를 설계한다”라고 본인의 건축 철학을 공유하셨다. 노먼 포스터님은 건축이라는 그체적인 주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인문학 전체적으로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현대를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다가올 미래를 소원하고 만들어 갈 수 있다. 나 또한 예술가 이자 한 사람으로 써 보이지 않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과거에 대한 인식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다짐한다. 그렇기에 역사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