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태몽
#1
5월 22일 임신 22주차
(입하 지나고 소만 다음 날의 꿈)
이건 꿈이다. 꿈인데 유난히 생생한 것이 분명 뱃속에 든 이 아이에 관한 꿈일텐데,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쌍태라는 것일까? 어째서 다정히, 나란히도 찾아와 또 나란히 구석으로 들어가더란 말인가?
귀여운 용 두마리,
어쩜 인사도 그리 깍듯한 지.
집으로 쓱 들어오며 "우리가 여기 살러 왔어요.“ 한다. 짐짓 놀라 "느그들, 어디서 살려냐? “ 물었다.
“귀퉁이에 구멍을 뚫어주면 들어갈라요.” 하며 안방 구석을 가리키더니, 이내 구멍 속으로 나란히 쏙 들어가던 너희들… 마을 샘에서 씻어 나온 것 처럼 깨끗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으니, 분명 쌍태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 웃어야 좋을까, 울어야 좋을까?
하늘이 주신 복이라 자식 하나 더 얻는 건 물론 좋은 일이건만, 하나도 부끄러워 새 아기 얼굴보기 민망한데 둘씩이나 얻으면 참 미안하다. 먹이고 입히는 일을 어찌 혼자 감당할꼬.
사람 사는 일이 달갑지 않은 시절이라, 심청이 이야기며 노다지 이야기로 이름 났다든 강원도 사돈 총각도 묘월에 병이 들어 죽고, 인사동 어디서 다방을 한다던 해경이도 일본에서 얼마 전에 돌아가지 않았던가. 학교를 보내고 유학을 보내도 오로지 묵묵히 제 돈을 벌지 않으면 다 허사라. 사치는 부끄럽고, 눈 밖에 나면 잡아가 모질게 하니, 오로지 제 스스로 힘을 내어 살기만 해도 좋을 세상이다.
쏫구 하나 장가 보내고, 뿌사리, 뿌레기야 제멋대로 다닐 만큼 다 컸다지만, 뿔만이나 깽새는 아직도 개구진 어린 것들이라. 거기 또 둘을 보태자니 며늘아기 덕 보며 숨 좀 돌릴까 했던 게으른 마음이 그만 쏙 들어가게 생겼다.
혼자만 하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 자꾸자꾸 속으로 아가 아가 부르며 부른 배에 손이 간다.
움찔움찔 노는 것이 성질이 활발한가도 싶었더니, 계속 간밤의 꿈이 어른어른 밟혀 혹여 둘이 노는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 배를 쓰다듬느라 자주 일머리 정신을 놓는다. 가끔 숨쉬기만 좀 힘들 뿐, 태동이 없을 땐 힘들게 하지 않아 더 없이 순한 아이로구나 하여 바쁜 일손 놀리느라 문득문득 잊어버리던 날들하곤 사뭇 다르다.
7월 9일 - 임신 30주차 (소서 지난 유월 초이틀)
열흘 남짓이면 유두에 중복이라 식구들 보신할 닭을 미리 눈여겨 보라 일렀는데, 새 아기 대답이 시원찮다. 아이가 자주 놀고 몸이 무거워 점점 거동은 물론하고 숨쉬기도 힘든데, 내 눈치보다 그 눈치가 마음이 쓰이는 것이 마뜩찮은 오후. 가끔씩 찌르르한 것이 조금씩 진통이 시작되려나 보다.
소서가 지나 비가 잦다. 또 한바탕 지나가고, 처마에 듣는 물방울에 졸음이 쏟아진다.
한잠 정신없이 자고 깼더니, 새 아기가 제 솜씨로 만들어 차게 식힌 화채라며 오미자에 산딸기와 꿀 넣은 것을 드시라 가슴 앞에 밀어 놓는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들이켰더니, 저도 한잔 마시며 체한 듯한 속이 좀 가라앉는다며 어떠시냐 묻는다. 기운이 좀 도는 것 같아, 가만 며느리 얼굴을 보니 어딘지 여전히 안색이 불편하다.
"좋구나. 날이 이만 저만 더운 것이 아니다. 어디 아프냐, 어째 안색이 안 좋다." 하니, 소서 다음 날부터 요 며칠 더위를 먹는지 입맛도 없고 자꾸 체한 기가 올라와 고생하노라며 힘들게 웃는다.
아아 -
입덧. 입덧이 시작되려는 게다. 갑자기 잠도 더위도 확 달아나고, 며늘 아기 얼굴이 또렷이 눈에 든다.
잎샘, 꽃샘도 다 갔는데 이 아이가 시애미 샘을 했구나! 지난 봄 부처님 오신 날에 올린 기도가 통했던가. "아가! 너도 아이가 들어선 모양이다.“ 했더니, 저도 흠칫 하더니 깜짝 놀란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가요?"
손도 느리고, 일머리도 두서 없는 아이가 저 임신한 것도 눈치 못 채고 느려 터졌던 게다. 좋아선지 민망해선지 활짝 웃었다 말았다 하는 모양이 예뻐 고부가 함께 이리 저리 호들갑을 떨었더니, 여기 저기 식구들이 하나 둘 모여 듣고 축하한다고 한참 온 집안에 시끌시끌 난리가 났다. 일 나갔던 남자들 돌아올 때 되어가도 그저 온 집이 들떠, 아이들까지 신이 났다.
저녁 상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야기꽃 웃음꽃이 봄날 벚꽃 여름 방초마냥 만발하여 늘어진다.
하아, 고부가 나란히 애를 낳는구나!
쌍태몽이, 그 꿈이, 정녕 이것이로다. 분명 그때 그 꿈을 꾸었더니, 내 속에 하나, 네 속에 하나인 줄 이제 알겠다. 그간 누가 무슨 태몽을 꾸었네 해도 친정언니한테만 슬쩍 둘러 비치고 꾹 담아두었던 지난 꿈 얘기를 이제야 모두에게 털어 놓으니, 설겆이 끝나고 밤이 늦도록 시동생들이며 동서들까지 몰려와 옳다구나 쌍용의 꿈 이야기에 여름밤이 짧은 줄 모른다.
겹경사는 겹경사인데, 어쩐지 또 부끄럼은 내 차지다. 가만 가만 배를 쓸어 이제 분명 하나 뿐인 아이를 다독이며, 생각해 본다. 다행이면 다행이라, 벗 같은 조카랑 아장 아장 다정하게 놀아라, 아가. 이리 늦게 나를 찾아왔는데, 꿈 처럼 나란히 손주까지 데려왔으니 그 마음도 착실하고 이쁘다. 그 소릴 듣는지, 제 기분 좋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한참을 가쁜 숨을 멈추고 사르르 아픈 것이 가시기를 기다린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밖이 어둡다.
어제가 그믐이었으니, 낮잠이 들어 못 본 뜬 달, 꿈 얘기 하느라 못 본 초생달을 내일은 이 아이에게 한번 보이리라. 좋은 소식 들은 첫 날, 유월 아침 새로 뜨는 달을 너도 보고 싶겠지.
어쩐지 밝고 씩씩하여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아 지친 잠도 오락가락이다.
고맙다, 아가. 조금만 더 기다리렴.
우리 곧 만날테니.
번쩍 빛이 비치고 쿠르릉 거리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나더니 동틀 무렵 그렇게 가만히 비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툽툽했던 기운도 어느 새 한 김 나간 것 처럼 조금씩 씻겨 나가는지, 뒤척이는 몸이 한결 수월하다.
간간이 장마가 들 때도 되었지만, 오늘 이 비는 어쩐지 사납지도 놀랍지도 않은 것이 시원하게 쏟아지면서도 봄비 마냥 부드럽고 명랑하다. 곤했던 마음이 탁 풀리고, 슬슬 다시 잠이 쏟아진다. 그만 일어나 밥 거동 할 시각인데… 또 한번 빛이 번쩍 지나간다.
#2
2월 20일 - 임신 25주차
꿈이 생생하였다. 눈을 뜨니 여전히 미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한참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생각하였다. 벌써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세수할 물을 준비해 둔 이는 마당 가득 쌓인 눈까지 싹싹 쓸어내는 중이다. 무거워진 몸을 핑계하지 않아도 늘 너그러운 시집살이지만, 더더욱 알뜰 살뜰하게 보살핌을 받으니 조금은 게을러지는 성 싶다.
“벌써 일어났어요?” 살며시 부엌으로 난 문을 열고 수줍은 목소리가 다정히 말을 건넨다. 오빠들을 모두 사로잡은 멋진 풍채에 빙그레 떠오르는 저 미소에 반하여 장군감 맞선도 마다했던 내가 두말없이 결혼한 이 사람은 요즘 더욱 신바람이 나 보인다.
대야에 물까지 떠주고 세수 마치기를 기다려 수건을 챙겨주더니, 형수들이 오늘은 천천히 나오라 하니 서둘지 말라며 밖으로 나간다. 어제 설 차례가 끝나 온 집안에 음식이며 일손이 넘쳐 보탤 것은 없겠지만, 오늘은 시집 온 지 일년 만에 친정으로 세배를 갈 것이라 마냥 여유를 부릴 처지는 아니다. 어머니가 해 보내신 새 속곳이며 버선을 꺼내놓고, 어제 다려둔 와이셔츠랑 넥타이와 양말도 옆에 가지런히 챙겨 놓는다.
혹여 태몽이 아닐까 혼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생생하였을 뿐 아니라, 꿈이라도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간밤 꿈에 옆집 약방댁 마당에 그윽히 쌓인 어리가 보였다. 낫가리를 덮은 짚단을 가만히 들춰보니, 그 아늑한 곳에 알자리를 둔 암닭이 달걀을 수북히 낳아 놓았다. 오붓하게 모여 있는 알들을 보며, 마음이 놓이고 어쩐지 다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딸인지, 아들인지…. 오손도손 모여 있는 알들이 다행스럽고 살뜰하였다.
친정에서 아이 아버지의 인기는 참으로 높았다. 고향집 옆 마을 교동에, 동경제대와 대학원에서 법과 정치를 공부하고 덕국의 백림대학에서도 최우수 연구원으로 있다 런던대학 연수까지 마치고 돌아와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거쳐 3, 4대 민의원으로 여러 당을 만들고 이끈 김준연씨 덕분에 양모 의원 보좌관으로 있는 아이 아버지도 덩달아 촉망 받는 입장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 해, 김준연이 이승만을 지지한다 하여 민주당에서 내쳐진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김준연“을 국회로 보냅시다” “김준연을 국회로 보냅시다” 하며 온 고향동네들이 떠들썩 하던 때가 그다지 오래된 일도 한 두해 일도 아니었다.
넉넉하지 않은 본가 사정에도 김준연과 같은 김해김씨인데다 선이 딱 떨어지는 기럭지에 양복이 썩 잘 어울리는 영민한 이 미남자와 오빠들도 늘 어울리고 싶어 서로 이 사업을 하자 저 사업을 해보자 끌어 대기 일쑤였다. 남자들 못지 않게 대찬 기질로 집안을 건사해 오신 과묵하신 어머니도 사위 앞에서는 어느 새 한없이 부드러워 지곤 하셨으니, 그런 이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는 나는 내심 행복하기 그지 없는 새색시였다.
아이가 생긴 뒤 한참 동안 유달리 길고 힘들었던 입덧 때문에 새해 들어서야 겨우 거동이 편해졌지만, 이젠 그새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 속으로 이 일이 어찌될꼬 노심초사 했더랬다.
간밤 꿈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고 속이 든든해 지는 것도 같다. 어쩐지 문득 딸을 낳으면 그 다음에도 쭉 딸을 낳든지, 아들을 낳으면 그대로 아들만 낳든지 두고 보면 알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동서, 와서 아침 들어야지. 몸은 좀 어떤가?”
언제나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둘째 형님이 방문 앞 마루까지 기별하러 오셨길래 서둘러 챙기던 짐을 한켠에 모아두고 함께 안채로 들어간다. 설을 지내는 동안에는 시댁의 우물과 부엌은 아예 형님 차지다. 시어머니 모신다고 마른 자리에서 이것 저것 시키는 것만 좋아하는 큰 형님은 은근히 내게는 일을 떠밀지 못하고 둘째 형님만 들볶으며 더 없이 편한 존재로 여기시는 눈치다. 모두가 걱정할 정도로 심했던 입덧과 무거워진 몸이 아니었더라면 좀 더 꼼꼼히 거들어 드릴 것을, 이제 여름 전에 시동생이 결혼해 살림을 내고 아랫 동서가 들어오면 다음 설날 살림은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고생이 많았지? 어째 몸은 좀 어떠냐?” 살림에는 깐깐하셔도 성품 인자하신 시어머니는 뒤늦게 식사에 합류한 며느리를 부드럽게 맞아주셨다. 어머니 상에는 아이 아버지와 두 시아주버님, 일찍 마을로 건너오신 고모님 부부와 사촌당숙이 함께 앉았고,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 둘과 어린 장손 조카, 친가 외가 사촌들은 맞대어 놓은 두 밥상에 크게 둘러 앉아 있었다. 부엌 문 가까이로 며느리들과 여자 친지들이 자리를 하며, 식사 시중을 드느라 가끔씩 부엌에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한결 나아졌어요.” 민망하여 모기 만한 목소리로 답하는 나를 아이 아버지의 수줍은 듯 뿌듯한 시선이 거들어 준다. “아침 먹고 준비 끝나면 바로 처가로 출발할게요.”
“그래야지. 서둘러야 어둡기 전 늦지 않게 도착하지.” 어머님 말씀 뒤로, 어제 모두 신나게 세배를 다니고 세뱃돈을 주고 받고 덕담을 나누며 시절 회포를 푸느라 늦게까지 분주했던 터라 오늘 아침은 간간이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 외에는 들뜨고 바쁘던 어제 아침에 비해 다소 차분하였다.
내가 시집오기 전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다섯 형제들의 우애와 효심은 마을에서도 아주 유명하였다. 이제 하동양반이라 불리는 남편은 중간인 세째 아들이었지만, 야학 선생을 하는 등 부지런하고 활발하여 일찍부터 대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외가 어르신들이나 친가 종친들, 형들까지도 늘 그의 의견을 묻고 따르곤 하였단다..글을 많이 알고 세상사 앞닐을 잘 내다보셨다던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제일 많이 닮았다나.. 아무리 뒷전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런 이 덕분에 이제 갓 시집 온 어린 새댁을 몹시도 존중해 주는 편이라 나는 은근히 뽐도 나고 겁도 나서 가급적 매사 성심껏 몫을 다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와 겸상하며 늦둥이 외동딸로 온갖 귀여움을 받고 자란 탓에 궃은 소리를 듣거나 궃은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시댁 살림을 좇아 적응하느라 나름 눈치를 보긴 했지만, 조그마한 솜씨에도 감탄하며 어여쁘게 보아주시는 어른들 덕분에 자신감이 조금씩 늘어가고 았었던 차에 뱃속에 든 아이의 심한 몸부림에 쩔쩔 매는 모습이 어머니는 내내 안쓰러우셨던가 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며느리도 예쁘게 보아주시는 어머님이셨다.
안사돈께 께 보내신다며 이것저것 싸 주시는 통에 짐이 조금 늘었지만, 아이 아빠는 몸이 무거워진 나에게는 눈길이나 조심하라는 당부와 두터운 목도리만 둘러주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 줄나리가 있는 강을 배로 건넌 다음은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강가는 꽁꽁 얼었지만, 배가 지나는 길은 열려 있었다.
길 중간에 있는 친정 당숙부님 댁에 들러 세배를 하고 점심을 들었다. 여자 어르신들은 임신으로 고생하는 나를 안쓰러워 하면서도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하며 수다를 떨었고, 숙부님과 집에 있던 친지들은 아이 아빠를 붙들고 이야기가 끝나질 않아 다시 길을 떠날 때는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각이 되었다.
멀리 학림이 보일 즈음, 친정 오빠들은 이미 동네 밖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섯 달 늦게 태어난 큰 조카 기치레이도 고모를 본다고 거기 나와 있다 맨 먼저 달려 나온다. 친정 어머니가 한꺼번에 쌍용의 꿈을 태몽으로 꾸어 준 동무같은 조카 기치레이 테이 - 이번 친정 방문은 그녀를 위한 소식도 하나 들어 있는 셈이다. 나는 한사코 반대하는 마음이지만, 작은 오빠의 아내인 올케의 친정 역시 시댁 마을인 탓에 그 마을 어느 총각의 짝으로 누군가 기치레이를 거론한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이미 설득을 당해 이번에 넌지시 선을 뵐 의사를 알아보려 하고 있었다.
쌍둥이 처럼 함께 자란 조카를 보잘 것 없는 마을로 데려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글뚝 같았지만, 나 역시 남편의 듬직한 모습 하나에 기꺼이 결혼을 원했으니 무어라 반대할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침 기치레이와 함께 뻔질나게 드나들며 옛날 이야기를 듣곤 했던 구림마을 작은 숙모님댁 다섯 살 위 조카도 내가 결혼하기 전 시댁 마을에 시집 와 가까이 살고 있았다.
작은 올케와 숙모님댁 조카 사위, 아이 아버지 까지 세 사람이 작당한 일이니 분명 어떻게든 성사될 일임이 분명했지만, 어쩐지 나는 탐탁지 않은 마음이었다.
“고모, 고모! 빨리 와, 넘 보고 싶었어! 애기는 잘 크고 있는거야?” 우르르 달려와 내 손부터 잡고선 고모부 안녕하세요 빼고 계속 흥분해서 재잘대는 통에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떠밀려 가다시피 한 아이 남편과 나는 한참을 서로 떨어져 걸으며 겨우 친정집에 들어선다.
“어머니, 애기씨 오셨어요. 고모 오셨어요!” 올케들이며 조카들이며 모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안방에 계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쁨을 김출 필요도 없이 점잖은 척 그대로 밀려나 앉아 계셨고, 겨우 무리를 뚫고 방안에 들어선 우리는 나란히 함께 다소곳이 친정 부모님께 세배를 올렸다.
부앜에선 저녁 상에 들일 생선을 굽는다, 횟감을 뜬다 요란한 준비가 한창인데, 유일무이한 사위를 앉혀 놓고 즐거우신 아버지 곁으로 오빠들이며 큰 조카들이 모조리 둘러 앉았다. 명절이면 사나흘씩 언제나 그렇듯 작은 아버지들과 가솔들 역시 방마다 한 가득인데, 그야 말로 큰 이벤트가 벌어진 듯 그만 모두 안방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어머니는 내 안색을 살피시느라 분주하시다. 나는 간밤의 꿈 애기를 하고 싶어 피곤도 잊고 어머니 앞에 앉아 먼저 시어머니 말씀을 전달하는데, 기치레이는 혹여 제 말이 나나 싶어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꿈 얘기는 내일이나 기회봐서 슬며시 해야겠다고 미루고, 딸래미 몸 고생에 안쓰러워 하시는 어머니 곁에서 이제 다시 종알종알 동네 소식을 전하느라 바쁜 기치레이 수다를 듣는 둥 마는 둥 고향의 포근함에 배를 쓸며 뻐근한 허리를 두드린다. 짭쪼름한 강과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깉다.
저녁 상을 물리고, 어머니는 곰방대에 담뱃잎을 채우려다 마시고 먼 길 오느라 뭉친 딸의 종아리를 만지며 혈을 풀어주려 하셨다.
“내가 너를 너무 늦게 낳아 마음껏 예뻐 해주지 못해 마음이 상했느니라. 기치레이는 지 애미가 젊으니 해줄 것도 많았지만, 나는 살림도 놓고 힘이 없어 온전히 다 해주질 못해 늘 아쉬웠느니라. 어찌하든 일이 있어 먹고 살면 그로 족하게 생각하거라. 너를 생각하면, 나나 네 아버지나 많이 아숩고 섭섭하니라.“
언제나 과묵하고 엄정하셨던 어머니는 맵시도 솜씨도 훌륭하셨지만, 막내 외동딸 하나를 온통 특별히 귀애해주지 못하신 것을 늘 가슴에 두셨던 모양이다. 입덧이 심해 잘 못 먹는다는 소식은 알고 계셨을 터인데, 막상 직접 당신 눈으로 보시니 더욱 기가 막히신 모양이었다. 그저 아무 내색없이 입맛 돋을 음식을 이것 저것 챙겨 자주 들게 해 주신다.
이튿 날, 기치레이 혼담이 구체적으로 오가고 상견례 날짜도 얼추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갑자기 부쩍 조용해진 기치레이는 부끄러운지 내 옆에 달라 붙어 궁금한 것이 많은 눈치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진 고모는 어른인데, 자신은 아직 어린 아이 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기치레이 엄마인 큰 올케가 오빠들이 따다 놓은 싱싱한 바다 꿀을 호로록 먹기 좋게 손질해 점심 상에 올렸다. 생선회를 결혼 후 처가에 와서 처음 맛 보았다던 이는 점점 바닷 향기에 익숙해져 가는 듯 했다. 황다랑어 말린 포며 어란도 입에 맞아 하였다. 나는 참으로 간만에 외가의 소식과 일본이나 타지로 나간 친척들의 소식과 더불어 마음껏 먹고 쉬며 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기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시댁에 보낼 김이며, 미역, 말린 생선들 까지 알뜰살뜰 꾸리시곤, 좋은 옷감과 미리 만들어 두신 아이 배냇저고리, 기저귀감들을 따로 챙겨 사위 손에 들려주셨다. 날이 풀리면 해산일 되기 전에 당신이 보러 오시겠다며, 모쪼록 사돈 어르신께 새해 인사를 잘 전해달라 부탁하신다.
아버지는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해 주셨고 오빠들도 나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예뻐해 주었지만, 이 집안을 묵묵히 이끌어 오신 어머니와 어머니의 유일한 딸인 나는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서로의 마음을 얼마간 나누고 있었다.
꿈 얘기를 들으시고 “좋은 꿈이니라. 잘했구나, 잘했구나” 하시며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셨기에, 나는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날이 조금 풀린 듯, 줄나리 뱃길도, 택시를 타고 내려 조금 걷던 길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풍성하고 안전한 낫가리 어리 안에 오붓하니 수북하게 낳아 둔 암탉의 달걀들 … 그렇게 알콩달콩 화목함과 다복함 외에 내가 딱히 바라는 것이 무어랴. 등 뒤에 누워 나온 배를 살짝 어루 만지며 살포시 안아주는 사람의 품안에선 어떠한 근심도 특별한 바램도 단잠에 녹아 사라지는 피곤함 처럼 어느 새 녹아 사라져 버린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기쁨만 내내 내 안에 충만할 뿐이다.
요도쿠 테이 - 나는 용 꿈을 태몽으로 받고 태어난 윤씨 부인의 오남일녀 늦둥이 막내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