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ude 1979, #0222 C major
文。
말이 좋았고, 글이 좋았다.
수줍은 미소가, 밝은 눈빛이,
부드럽고 깊은 목소리에 묻어나는 진심이
그저 좋았다.
술 한잔 못해 금새 빨개지는 숫기 없음이 좋고,
담배연기 사이로
날마다 낡어지지 않는 바르고 새로운 생각이,
바람신발 신은 헤르메스처럼 번쩍번쩍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멋져서 좋았다.
답지않게 어딘지 서두르며 분주하던 그날 아침…
agitato - 어디선가 불쑥 날아 든 것 같은 36초 간의 진동이 문득 가슴을 훑고 지났지.
자리끼 그릇에서 쏟은 물 처럼 한번도 내지 않던 역정을 쓱 엎지르더니, 퍼드득 날개짓 몇 번에 고요한 태풍 속에 모두를 떠넘기고 흔적도 없이 혼자 날아가버렸나.
진짜이——원.
아득한 세월이 흘렀나 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이는 움직일 기미도 없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저도 기가 막혔을까. 또 딸이걸랑 낳자마자 달라는 집에 그냥 보내 버리잔 말을 누군가 열심히 하는 듯 하여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몸이 무거운 건지, 마음이 무거운 건지…갑자기 소리없는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르르하고 쓰린 맛이 코로 입으로 목구멍을 타고 허파 속으로 찌르듯 넘어가더니, 온 몸을 구석구석 빠르게 한바퀴 돌아 오목가슴 한켠에 턱-하고 고인다.
곁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겨우 한달이 꼬박 지났노라고 알려준다. 아이가 나오려면 아직 한달이 더 지나야 한다며 누군가 자꾸 일으켜 입가에 숟가락을 대어준다. 우리 어머니, 아들을 잃으신 우리 시어머니 박길례 여사님이로구나.
설 차례, 정월 보름은 어찌 지나갔을까?
여전히 믿지 못해 이 작은 집을 날마다 지키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도 없건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어째서 아무도 제대로 된 말 한마디를 또박또박 꺼내는 이가 없을까?
12월 12일.
December12.
그 좋은 말솜씨로 집안 숙모님 막내아들 당선시켜 놓았다며 세상 바루 뒤집힌듯 다들 그리 좋아하더니… 방 벼락 한구석에 여전히 나란히 붙어 있는 한갑수, 김윤덕 선거 포스터가 마른 물기 너머 희미하게 눈으로 들어온다.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네」…
언젠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연재소설 제목이 꼭 그것이었던 같은데… 나고야… 피아노…만하탄.. 재즈… 발레… … 뽀이와 쿡… … 사할린의 사냥꾼…. T의 아들……..그리고… C…
C… 간호부C…. C장조… …. agitato…
12월 12일.
December12.
정신이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도로 눈을 감는다.
“눈 좀 떠 봐라… 눈 뜨고 한술 더 떠야지. 한술 더 뜨고 기운을 차려야 쓴다. 아야… 뱃속에 든 애를 봐서 한술 더 뜨자…”
너무나 짧다. 부러 그랬을까? 그 다음이란 것이 있었던가?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네」…
죽지 못해 안달하더니 그예 내가 태어나던 해 먼저 홀연히 가더라던 이상한 천재가 썼다던 이야기… 어머니가 모아두신 10년도 넘은 잡지에서 틈틈히 읽어주시던 그 긴 이야기…. 둗다가 잠들면 다음에 또 새롭게 시작되어 끝나지 않던 아주 오래 전의 그 긴 이야기….
진짜이-원…. 진짜이… - 원…..
진(金)…… 짜이(在)… 워…. …
피아노곡 말고 차라리…바이올린곡…. 쇤 로즈마린이 듣고 싶다.
C major 프레류드 따위는 말고… 부드러운 녹턴…이 듣고 싶다.
36초는 너무나 짧다.
옛날의 누구 누구는 서른 해도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지만… 우리가 함께 한 스물하고 두 해는
너무나 … 짧다. 오목가슴 한켠이 조여들고, 눈물이 흐르다 만다. 도채비가 스쳐갔는지, 생시인지 꿈이었는지 속이 메스꺼운 듯 하더니,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진다.
바이올린 곡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