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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된 개인주의자, 란

1일까, 0일까

by 셔블

있고 없음의 무한한 가능성 덩어리 - 썩음과 죽음의 미묘한 격차를 비집고 들어와 영원함을 차지하는 ‘것‘의 세계 - 열 일곱번을 시도한 끝에 부딪히는 18이란 수상한 지점에 미키가 서 있다고, 박씨의 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생졸 1545

세살 난 아이의 눈에도 예쁨은 보이는 것입니다. 일곱살 아이는 미련하게 제 뜻을 세워 놓고 끝까지 굽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蕑)은 난(蘭)이고, 란(兰)은 영란(england), 하란(netherlands), 애란(ireland)이 되기도 합니다. 자꾸 닮아가고, 전혀 달라져 갑니다.


난초(蘭草)와 혜초(蕙草)가 함께 자라 삼구(三九)에 시름하여 지더라도, 그 기질마다 혹은 서로가 서로를, 서로가 서로를, 겨를도 없이 따라 흘러갈 뿐 거스르질 못합니다. 빙어와 연어가 차가운 물을 좋아하긴 하여도, 다시 저 멀리 오랜 길을 따라 흘러 갈 뿐 제 살에도 단단한 염질을 해두어야 할 적에야 오히려 동쪽을 그리워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적빈을 원망하여도 적선을 연구하여도, 일그러진 시대는 와서 우리를 고민케 합니다. Consumption. 獨立斜陽萬木中. 연(昖)은 서쪽에 기대어 지긋이 눈을 감고 다시 동이 트기를 기다립니다. 덕수와 해금강 금빛 모래가 아름답기는 하겠지만, 외로운 지경에서는 어쩌다 어쩌다 스스로 살아 흔들리는 갈대가 되어 엄청나게 큰 실패를 이뤄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본디 소심하여 사나운 것과 격한 것을 무서워하므로 이리 저리 간을 보아 한결 같고자 하였지만, 어머니, 할머니, 그날 한 가득 실어보낸 마가레뜨 한 상자 외에 결국은 아무것도 마음껏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영란(領蘭)은 심장에는 좋지만, 독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선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다는, 따뜻한 바다는 다행히 시작도 끝도 같아요.

몹시 견디기 힘든 아픔도 어떻게든 거뜬히 삭히고 녹여냅니다. 꿀처럼 달큰한 진액으로 감싸고 감싸 세월로 황홀한 빛을 빚어 냅니다.


바다에 던져버린 것들을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참 오래 방치하여 썩어 버린 것들에서 나는 냄새가 견딜 수 없어, 모두 떠났을 지도 모릅니다.


썩음과 죽음의 미묘한 차이를 비집고 들어와 영원함을 차지하는 '것' - 0은 1보다 앞에 있는 듯 하지만, 그 어느 곳에나 자리하여 공간을 만들고 1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훌륭한 개인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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