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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메타시그마

삼삼칠 박수를 치다

by 셔블

브라질로 출장을 갈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온다. 포루투갈어는 자신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른다. 리자보아(Lisbon)와 대서양 어디쯤의 온천 가득한 섬, 그리고 몇 군데 도시와 마카오를 다녔고, 포루투갈 출신 국제변호사의 에스프레쏘 마끼아또 시중을 꽤 들어주긴 했지만, 정말 그 언어를 1도 모른다.


두둑히 비용도 챙겨준다는데, 정신력의 고갈을 원하는 대한민국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개인적 욕망 때문에 남의 일을 망칠 순 없다. 오, 에르난데즈가 아직 근처에 있다는 것과 잠시 크로아티아의 Χ와 함께 유쾌한 ΙΤ듀오로 가깝게 지냈던 F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들의 이름을 몽땅 잊어버렸다는 것이 놀랍다.


마침 사랑하는 '피코(Pico)'의 탄신일이 얼마 전이었다는 것이 생각난다. 63년생 피코는 미란돌라 출신이라고 한다. 다만 15세기의 6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이었다는 것은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고향을 한번 스쳐 지나가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피코보다 100년 정도, (140년 정도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앞선 어떤 실존자의 이야기를 쓰려던 중이었다. "Οοοοοοοοps~!" 아이디딧 어게~인.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클릭하는 순간 글이 사라진다.


(Ζen, ----!) 정신을 가다듬고, 이것이 훌륭한 KTX 시스템의 옥의 티 아닌가 싶어 공짜로 주는 와이파이를 차단하고 핫스팟을 연결해 본다. 브런치스토리라는 격조높은 사이트에서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닐 것 같은 생각에서다. 음, 핫스팟도 소용이 없다는 건... ΚΤΧ는 역시 훌륭할 만큼 훌륭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아직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사파리의 버전 때문이거나 분명 사파리를 싫어할 것 같은 구글의 음모에 가깝다는 생각이 스쳐, 기어이 임시로 쓰는 크롬에서 해당사이트를 열어본다. 카인 프로블렘 메아(Kein Problem mehr!).... oder? 짠 하고, 사이트 문제는 시원하게 해결된다.


남은 문제가 심각하다.


미란돌라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리고, 포루투갈어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정중히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을 올리고, 어디서 끊어졌더라 잠시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심지어 에르난데즈가 아니라는 것이 퍼뜩 생각나 연락처를 뒤지니 전혀 다른 이름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뇌가 몽땅 망가진 것이 틀림없다. (이게 다 계리 때문이다~ 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지금은 뇌도 입도 코도 귀도 살아있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 8개만 살아있는 것 같다.)


이제야 살바도르와 리오데자네이루가 기억난다. 어느 한 곳의 이름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떠나올 때의 히우지자네이루 공항과 슈가로프, 코파카바나 해변, 김우중 회장을 연상시키던 그곳 호텔리어 백만장자의 노년 이야기, 구름에 가려 겨우 발등 밖에 볼 수 없었던 거대 예수상 등등이 주루룩 떠오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분에 Κ-프리미엄을 확실히 맛보기 시작할 즈음, 2년 간격으로 두번 째 대서양을 건너던 일정...


기차가 잠시 멈췄던 역을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도 용감하게 다시 시작한다.

손가락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

짧게 '피코'의 탄신을 기념하고, 그 보다 140여 년 전의 그 어느 곳으로 다시 탐방을 떠난다. 기차가 도착하려면 아직 약간의 호사를 누릴 시간은 충분하다.


"AD MARIOREM DEI GLORIAM"

역시, 무리인가?


오히려 100여년을 더 뒤로 밀리고 만다. 역 대합실 까페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마셨던 크레마 그윽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는 뇌가 망가지다 못해 소실해가는 이 상황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다. 포어 뵈어쯔, 뤽 뵈어쯔.... 전진이든 후진이든, 잠시 동안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몰타로 떠밀려갔다든가, 한 사백년 뒤에 서쪽에서 돌아오던 법현이 어쩌다 칭따오로 떠밀려갔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약간의 쏠쏠한 이야기 거리를 남겨주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쉬어간다. 궁금했던 예수회 카톨릭 사제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 되려 다행이다. 요타메타시그마.... "예수"를 표기한 그리스 문자에서 "예" 부분만 딴 ΙΗΣ를 로마자로 바꾼 IHS를 카톨릭 예수회에서 '크리스토그램' 삼아 상징으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섬 처럼 둥둥 떠 있던 리스본에서의 기억에 천일염 몇 알을 떨어뜨려 맛을 낸 고소한 소금빵 맛이 난다.


웃을 수 있다.

녹초가 되기 전에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려면 방향도 없는 노젓기는 그만 두고 정해진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짝~~~! 하고 응원의 박수소리를 듣고 싶다. 몇 좌석 앞인지... 기차가 출발할 때 들리던, 한글도 못 뗐을 것 같은 아이가 흥얼거리던 제니의 '만트라'도 좋을 성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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