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or not to be - 구사일생의 을사년 예고편
토요일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활짝 열린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진 험한 것들이 마구 난무(亂舞)하는 그런 날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난방비 폭탄에 어질어질하다. 오그라드는 손가락에도 히터를 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겨우 포트에 물을 올려 만든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조금씩 몸을 녹이며 꼼꼼히 명세서를 살핀다. 전월과 전년도에 비해 늘어난 사용량과 금액의 차이를 따져보니, 이상하다. 다행히 기본요금이나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액 등은 엇비슷하게 그대로인데, "소상공인 지원"란이 사라졌다. 요청하지 않았지만 긴급정책이었던지 통 크게 깎아 주었던 한 달 전 고지서의 지원금이 소한과 대한이 들어 있던 이번 달 요금고지서에서는 외려 아예 사라지고 없구나. 명의변경 절차가 복잡해 미뤘더니, 그대로 날아갈 부쩍 부푼 환급분 부가세도 눈에 밟힌다. 갓 취임한 김수로왕이 봄에 성 쌓기를 마치고 농사에 전력하다 가을에 착공한 궁궐과 집들을 준공했다던 44년 갑진 2월은 얼마나 뿌듯하고 흐뭇하게 경사스러웠을꼬. 이천 년 가까이 지난 신도시 시공력 최강 조상의 세심 리더십에 괜한 부러움을 보내며, 전기료 폭탄만 안기고 이제 아주 가버린 2024년 갑진의 뒷모습이 쓰라리고 아리다.
29일 기어이 살모사처럼 꼿꼿이 일어 선 을사년 - 이 을씨년스러운 추위는 어쩌자고 이렇게 기승을 부리나. 오는 입춘(立春) 기념으로 또또 행차하신다는 동장군(General Frost)의 서슬에 벌써 기가 질리며, 지금 한라산에서 눈썰매를 즐기고 있는 오십 중반 철부지 언니들의 난만한 천진함이 그저 맥없이 반가울 뿐이다.
포용(Ιnclusive G)의 마지막 시간, 2025년 - 소서러스(Socerers), 소서레서스(Sorceresses)들이 총 출동한 듯 있는 대로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속은 다 여태 속아 산 자의 자업자득이다. 소곤대고 쏙닥거리는 소문이란 것이 원래 다 그렇듯, 그저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싹 지나치질 못하고 스치며 떠도는 잡음마다 이리저리 진위를 뜯어보느라 아까운 시간을 쏟아 버린다. 아, Το be - 일단, 난방을 켠다. 그리고, 식어버린 포트 물을 데워 새로 만든 커피 한잔에 겨우 녹아드는 속을 살살 추슬러 본다.
10의 의미는 결국 구사일생의 결단, 날아오르든 떨어져 죽든 결판을 내야 할 낭떠러지 끝의 선택이란 의미 아닐까? 일과 영의 있고 없음으로 모든 것이 초기값 대로 무한확대 자동 반복 재생되는 프랙털 시점에 이르러서야 꼼짝없이 맞닥뜨린 "To be, or not to be"의 지경엔 애당초 품지도 못할 이 끝과 저 끝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분주히 오가며 마음껏 흔들리다 멈춰버린 시계추에 거꾸러져 처 박힌 9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러자고 中을 생각했던 것이 아닌데, 아등바등 악착을 떨며 발을 구른 대가인지 소원성취 한번 희한하다.
차라리 제 발로 걸어 어느 한쪽으로든 걸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앞뒤로 힘차게 구르다 뱅글뱅글 돌고 있는 빈 그넷줄에 홀로 엎어져 버린 듯한 이 어정쩡함에 애가 타고 간장이 녹아 끓어오르다 못해 천불이 일 것 같은 가슴팍엔 하시라도 꼭 소박사ΤV가 전하는 지구 최강 10.3 강도의 지진이 날 것만 같다. 천만다행 차분한 미열이 오르고 어렵사리 미소가 피어나는 건, 순전히 오늘이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커피가 따뜻하다.
포용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오래도록 포용하느라 기운은 쇠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가 든 게다. 증명된 개인주의자가 뭣하러 이리 오래도록 무리의 일을 신경 썼던 걸까, 후회의 쓰나미가 아홉 겹이다. 어쩔 수 없는 명(命)이자, 잘잘못을 모른 때 선택한 인(因)과 연(緣)이 쌓이고 쌓인 총체적인 난국(亂局)일뿐이라 억지 핑계를 끌어 대지만, 금방 식어버릴 커피 한잔에 온기를 구걸하는 모습은 스스로도 애잔하다. 짐짓 풀어져 느긋해진 뱃속에선 약간의 기운이 돌고, 삐죽 얼굴을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는 낯선 방문자 덕분에 머리 속도 차분해진다.
지난밤 교육에 관한 소소한 일거리로 물어볼 것이 있다며 전화를 한 지인이 흘리는 말에 '(손목사와) 박 회장이 10억을 들고 찾아왔다더라는 전광훈의 이야기가 돈다'길래 찾아보았다. 몇 시간 앞서, 전광훈이 쓰는 돈이 일 년에 천억이라더라 툭 전하는 말도 무심코 들은 터였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속에 떨어진 불씨 - 벌고 쓰는 씀씀이의 규모가 이미 조 단위인 세상에서 '큰 일' 자처한 이들은 천억이라고 해봐야 적다고 투덜댈 것이 뻔하지만, 여전히 기 만원, 기 십만 원, 기 백만 원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모두 해내야 하는 일개 개인들 중 지극히 미미한 마른 꼬챙이 같은 하나로서 볼때, 이 심상찮은 소문과 전기세 고지서의 만남은 유리가루 섞어 인(燐) 바른 종이에 염소산칼륨 묻힌 쏘시개를 확 그어 칙- 하고 불이 붙는 현장에 다름 아니어서다. 졸렬한 인품 때문에 속닥거리는 소문들에 괴로워하는 못된 병이 화근이다.
무슨 무슨 정치인들을 만나는 미국방문을 마치고 도착한 인천 공항에서 씨부리셨다는 영상과 이단 저단 하며 야단했다는 영상 두 가지를 찾았다. (씨부리셨다는 건 독일어로 말씀하시다를 뜻하는 sprechen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것이라 해두고 싶다.) 전광훈의 이름을 들은 날로부터 수년이 지나도록 이런 뜬금없이 적극적인 액션은 처음이지만, 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와 병이 도진 것이다.
10억에 이어 100억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숫자를 보면 좀 부러워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이 심사가 참으로 고약하다. 또 생각해 보니, 소상공인 지원금 절감액 -72,167원에 감격하고, 겨우 -7원 원단위절사금뿐인 고지금액에 간장이 녹고 절망하여 난방도 틀지 못하는 인사가 어찌해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울부짖고 드러눕고 핏대를 세우는 타인들의 모습에는 일말의 공감도 하질 못하는지, 그것도 혀를 찰 일이고 기가 막힐 따름이다. 덤으로 따라 나온 쇼츠까지 보다 모름지기 정적이라 함은 일단 걸어 넣고 배우자와 자식은 물론 사돈에 이웃사촌까지 먼지 한 톨 없이 탈탈 털며 유죄무죄 따지지 말고 사법리스크라는 제법 멋진 말 한마디로 숨통을 조이고 짓누르며 애초에 싹을 잘라 거동을 하지 못하도록 받은 그대로 한번 돌려줘 봤으면 좋겠다며 바득바득 홍준표를 몰아세우는 유시민의 말에 조목조목 시원한 위로를 얻는 걸 보면, 뇌구조상 장착된 선천적 정치사회적 정체성이 있다 비슷한 얘기나 맞나 보다.
지인에게는 박 회장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인 편이라고 무심코 답했는데, 생각건대 누군가에게 타인을 평하다니 이도 참 안된 짓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엎지른 물, 중요한 일도 아니어서 넘어가려다 2012 임진년에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궁금해져 관련 근황을 찾아본다. 통 크게 잘 버는 박 회장의 신앙을 조금 안다. 온 가족이 1억씩 기부하고, 부부가 따로 10억씩 기부했다는 선행기사도 덕분에 보았다.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지난해 기독교 행사에도 100억쯤 썼는지 그런 말도 들어 있어, 그런 곳에 그런 돈을 쓸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재산관리와 신앙에 진정성 있는 인물이라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다. 전광훈을 찾아간 것도 그의 신앙과 사업과 정치적 견해에 비추어 보면 이해 가는 부분이다. 평소대로 특별할 것 없는 성향이다. 손목사라는 분은 모르는 이다.
전광훈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언제쯤이었을까? 2017년 초 아닌가 싶다. 그보다 한 두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이런 편지가 왔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답을 구하며 쓱 내민 종이편지에 어리둥절했었다. 그런 이름이,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어느 하찮은 개인주의자가 무슨 답을 할 수 있나 싶어 "아, 네... " 우물쭈물 말끝을 흐려 넘어갔더랬다. 직업이든 신앙이든 개인 스스로의 선택과 개인 스스로의 책임 영역이요, 정치란 이미 수많은 노련한 사람들이 빈틈없이 차지한 고도의 공공 네트워크 영역이라 그저 소소한 문제나 해결하고 오래 꿈꾸던 일이나 해치우자는 생각에 골몰하는 중에 필요한 대화란 오로지 '포용 가능한 어떤 플랫폼 하나를 만드는 데 유용한 지식적 발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출판용 원고 완성에 관한 것이었던 때였다. 문재앙, 문재앙 하며 이낙연 총리까지 싸잡아 분기탱천 언성을 높이는 소리는 전부터 꽤 들었어도 평생 나랏일 오래 하셨으니 전문가로서 정책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나 보다 했을 뿐, '극우'로 똘똘 뭉쳐 나라 망치자는 선까지 갈 정도였는지는 상상도 못 했으니 이런 미숙함이 또 뒤늦게 이런 속병을 키운 폐착이었을 테다.
'전광훈은 훌륭한 목사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마도 2018년 경 아니었을까 싶다. 2017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여전히 그가 누군지 몰랐다. 사뭇 미국식 젠틀맨의 습관이 배인, 누가 보아도 매우 건실한 기독교도인이신 또 다른 어르신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심지어 문화예술에 식견이 높은 전직 언론인의 말씀이니 아마 그런가 보다, 그 자신도 정치적으로 보수적 관점을 가지신 듯하여 그렇게 볼 수도 있으려니 하고 무심코 넘겼다. 기독교단은 복잡해 보이고, 쉽게 그 전통과 전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은 2019년 코로나 시국에서 처음으로 신천지가 이름과 달리 실상 매우 오래된 종교적 (종교를 내세우는)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확실해졌다. 정치만큼 종교 역시 고도의 전문 영역이자 불가침 소신 구역이기 때문에 당시엔 그렇게 훌륭한 목사를 못 알아보는 무심함을 살짝 미안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런 저런 두 어르신의 증거로 뭐 그런 사람 있나 보다 하긴 했지만, 신도들을 앞세워 교회부지 보상금을 챙기네 마네 하는 뉴스를 간간이 보며 속으로는 별 볼일 없는 이상한 놈 다 있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을 이끄는 개인은 언제나 다면체처럼 다양한 면을 갖는다.
공항에서 마이크를 붙들고 무슨 '계약'을 해야 한다며 미국 투어를 자랑하는 말과 뒤이어 무슨 발언이라며 씨부렁대는 두어 사람 얘기를 듣다 말고, 영상을 꺼버렸다. '계약만 하면...' 이런 이상한 말에 내심 짐작대로 사기꾼 아닌가 싶고, 이어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가관의 헛소리로 들려서다. 공개 발언대에 서지 않으면 이단이 아니라는 확신을 못하겠다며 10억을 거절했다는 다음 영상은 조금 자세히 들어보았다. 사돈 남 말이라더니, 돈 때문인지 아무 말이나 내지른다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10억을 마다하는가 궁금했다.
낯빛까지 진지해져 가며 '공개'하지 않는 연대는 연대가 아니라며 멈칫멈칫하는 듯했다. 손목사라는 사람을 겨냥해 '함께'의 조건은 '내 브랜드 밑으로' 식의 발언을 하는 것 같았다. 돈을 안 받겠다고 하는 이유는 다소 명쾌했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손목사 뒤에 10억의 돈 주인인 박 회장이 있고, 그 돈이 다단계 사업으로 벌어들인 것이므로 거절한다는 논지였다.
돈에는 언제나 표식이 붙어 있는 법, "Render therefore un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un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라며 바리새인들에게 주의를 주셨다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자면, '분란'이라는 의심의 꼬리표가 붙은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은 타당하게 들린다. 순수한 믿음을 지키자면 "교인들을 서로 자기 라인의 사람으로 만드려다 싸움질하는 다단계를 교회는 절대 받아들여선 안된다"라고 못 박는 모습이 단호해 보였다. 순수를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에 뜨끔하지만, 그렇구나 하며 소문의 전말에 허비할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느꼈다. 어휴, 이름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을 괜히 알아버린 뇌세포에게 살짝 미안하다.
도토리를 모으다 말고 제 꼬리 잡으러 뱅글뱅글 도는 귀여운 다람쥐들인가. 박 회장 사업을 지지해 준 현직 극우 전직 고위공직자 노인에게는 함께 하자며 편지를 쓰고, 그래서 좇아갔는지 모르겠지만 힘을 합쳐 보자고 달려간 기독교인에게는 팽을 놓으며, 조잘조잘 굳건하게 나 아니면 안 되는 순전하고 순수한 믿음과 애국을 '국민'들에게 의분 탱천 죽어라 목청 높여 호소하는 이런 미친 자들에게는 경에 못 미치는 조 보다 적은 억 소리 나는 돈도 믿음 앞에 아무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7만 원씩 되돌려 받는 보상금을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착실히 가꾼 관계로 지인을 소개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자신들의 세금으로 만든 물건을 소비하며 유통시스템에 입력된 초기값 대로 실시간 계산된 복권처럼 이리저리 흘러 다니며 불어난 복불복 같은 돈을 누가 지혜롭게 쓰는지 생색을 내며 쓰는지 알 만한 사람들과 신(神)께서는 다 알지 않으실까 약간의 순수한 믿음이 생기는 것도 같다.
아. -7원의 위로가 더없이 달콤한 시각, 털고 일어나려다 혹시나 해서 눌러본 머스크 영상의 사자후 같은 일성이 갑자기 가슴을 팍 찌른다. 재택근무랍시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현장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몸으로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을 낮춰보면서 스스로 고급진 일 방식에 흡족해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론거리는 눈에서 쏟아지는 레이저 빔과 입에서 침과 섞여 튀어나오는 듯한 날카로운 사운드에 직격을 당했는지, 고장 난 나침반 바늘이 쉬지 않고 팽글팽글 도는 것처럼 어지럽고 따귀라도 맞은 듯 뺨이 화끈거린다. 일일이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겨우 난방비 걱정에 잡다한 뜬소문이나 뒤적거리느라고 이 귀한 시간을 다 써버린 쇠락한 뇌의 정수리와 화기 든 내장에 대침을 쏙쏙 꽂아주는 나이차 1년의 세계 1위 부자라니. 2015-2025 십 년 간 포용하며 "성장하자"길래, 아무나 껴주는 줄 았았지 이렇게 호된 꾸지람을 들을 줄이야.
1455 을해찬탈로 시작하여 펼쳐진 윤(정희왕후)-한(인수대비) 편대와 손톱간수 못한 며느리(폐비 윤 씨) 덕분에 거쳐야 했던 또 한 번의 반정 뒤에 조광조를 찍어내고 죽여버려 외려 사림을 역대급으로 키워버린 홍, 안, 김, 심 등의 작당과 작은 윤이 큰 윤을 몰아내는 1545 을사사화(문정왕후)로 스파이크를 찍고, 파주와 강릉을 오가던 이이가 국방부 장관시절 건의했던 십만 병 양성 권고안을 내팽개치며 결국 자국의 울트라 초토화로 일본을 세계 대국의 반열에 올려 버린 임진왜란을 포함하여, 파주로 아주 옮겨버릴 작정까지 했던 광해가 쫓겨나며 내우외환의 정점을 예고한 1624 반정까지 - 늘 하던 그대로 쭉쭉 내달리던 조선시대 그때와 (큼지막히 뚝 잘렸지만은) 여전히 같은 땅 위로 십 년 만에 닥치는 심한 시베리아 한파가 몰려온다는데, 시린 발에 서리가 내려앉을 것 같은 토요일의 어스름 저녁, 실상은 9 근처에도 못 간 6의 난동일 뿐임을 기억하며 잠시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마지막 포용의 시대를 어찌어찌 잘 견뎌봐야겠다.
1604 서산대사 돌아가시던 해 초대 다이묘의 영광을 누리며 지금까지도 천황의 처소로 쓰인다는 에도(江戶) 성을 지은 도쿠가와 이에야쓰, 그가 죽던 1616년 함께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가 남겨 준 명대사 '투비 오어 낫 투비'를 나즈막히 읊조려 보며......
우리는 언제나 못 먹어도 고(GO) 요, 필사즉생 필생즉사 하거늘, 전후 사무라이들의 호들갑에 뒤죽박죽 떠돌다 흩어진 허다한 뜬소문들 속에 혹시나 한 조각 실바람처럼 묻어 있었을 충무공의 목소리를 행여나 셰익스피어도 설핏 들어보았으려나... 혼자 가만히 상상을 해 본다.
저녁 찬거리 장을 봐야 할 시간 - 써도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이야기들은 난중에 또 쓰지.
구사일생은커녕, 못 먹으면 독박으로 죽는 다이 - 십육 세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