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 봄날처럼 홀연히
임신 7주 차, 입덧이 시작되고 태몽을 꾸던 신비한 한 주가 지났다.
희고 고운 복숭아 도(桃), 나의 이름이다.
나이 이미 사십에 들어 단단해진 볼 갗이 남부끄러움에 도로 불그스레 물들곤 한다.
갓 시집온 며늘아기 눈을 어찌 맞추노, 민망한 마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매사가 부드러워진다. 섬긴 지 벌써 몇 해나 지났나, 아득한 세월에 긴 숨 내쉬며 슬쩍 손을 꼽아보다 잠시 활짝 가슴을 편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아마도 무진일 그날이거나 무인일 동짓날 그날 일테지.
아가, 무탈히 있으려무나. 이왕지사 좋은 일로 내게 왔으니, 보채지 말고 조심조심 오너라.
올봄엔 어쩐지 그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 열두 동이 드는 항아리에 물을 붓다 말고 얼얼한 찬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본다. 내일은 입춘(立春). 설이 코 앞이라 몸은 바쁘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울렁울렁 이 아이생각뿐이다. 귀여운 병아리 같을까, 용맹한 호랑이 같을까. 오는 해가 정축(丁丑)이니, 붉은 소처럼 어여쁠까.
다섯 놈이나 아들들을 키웠는데, 그저 처음인 듯 어찌 이리 새삼스러운가.
봄처럼 설레는 마음, 누가 볼까 무섭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리다. 물때가 되었는지, 간질 잘 된 바다 냄새가 향기롭게 섞여 피어오른다.
파랗게 높은 하늘에 흰구름 송이들이 새 애기가 푸새질한 빨래처럼 까불까불 들썩이며 남쪽으로 몰려간다.
저녁 상 물리고 너랑 나랑 다듬잇돌에 또닥또닥 두드려 펴자꾸나. 어디서 왔는지 자꾸 꼬물꼬물 치어 오르는 신호를 보내는 작은 너에게 방망이질 솜씨를 자장가처럼 들려주마.
귀여운 내 병아리, 잘 지내보자.
마르고 다린 옷감으로 다음 설날에는 너에게도 어여쁜 설빔 하나 장만해 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