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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일신 Sep 15. 2022

공무원의 육아시간과 유연근무제

  공무원의 복무제도에는 유연근무제나 육아시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나도 육아시간을 종종 사용한다.(만 5세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 소속 공무원은 일 2시간 이내, 최대 24개월 동안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2018년쯤부터 시행된 제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같은 팀 직원이 유연근무제를 신청하여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도 있다는데 그게 불만이라고 털어놨다.


" 자기 인생 즐겁게 살겠다고 법에서 보장된 제도 쓴다는데 왜 불만이야~!!! 나도 육아시간 자주 쓰잖아~!! 억울하면 본인도 유연근무 신청하던가~"


  이 유연근무제 시행 초기에는 유연근무제 실적이 있어서 부서별로 유연근무제 인원을 할당하여 몇 명씩 무조건 유연 근무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몇 명에 들어가서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일찍 퇴근하겠다고 신청했었는데, 사실 이게 쉽지가 않았다. 일찍 출근하는 것은 결혼 전이라 얼마든지 가능했는데 일찍 퇴근하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고정적인 이 조직에서 5시에 퇴근한다? 내 업무는 일찍 출근해서 처리한다 치더라도 그럼 내가 없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민원처리는 누가 한담? 나만 근무시간이 조정되지 민원인들이 인식하는 관공서의 근무시간은 9시에서 18시로 정법처럼 굳어 있지 않는가. 결국 같은 팀원이나 팀장님이 내 업무 민원을 처리해줘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부서 할당분이 있어서 유연근무제를 신청 기간 동안 하긴 해야 해서 출근은 헐레벌떡 1시간 일찍 하는데 퇴근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초과근무만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결국 한 달 정도 하고 포기했었다.

  이런 제도는 사실 외부 민원이 별로 없는 업무는 충분히 가능하다. 내부 직원을 상대하는 업무는 시간 조율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유연근무제 신청한다 하면 주변에서 ' 일이 한가하니까 저러지', '남들은 바빠 죽겠는데...', 이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참 이 유연근무제가 시행하는 목적은 진짜 좋은데 우리가 활용하기가 어려운 제도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남편의 불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남편은 본인들 알찬 인생 살겠다고 일찍 가버리면 그 민원 전화 대신 받아주고 내부에서 찾을 경우 설명해줘야 하고 그러다가 정작 내 업무처리 늦어져서 야근해야 하는 경우는 누가 보상해주냐고 한다.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이렇게 장기적으로 하면 이건 진짜 불평등한 상황 아니냐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억울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육아시간 사용할 때마다 뜨끔하다. 사실 현재 내 업무는 외부 민원은 거의 99% 없다. 그래서 육아시간 사용해도 큰 부담이 없겠다 싶었는데, 남편의 저 억울한 읍소를 듣다 보니 ' 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팀장님과 팀원이 성가시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업무는 대신 누가 처리해주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내가 자리 비웠을 때 나를 찾는 전화가 오면 대신 받아서 '육아시간 썼으니 내일 전화하세요, 메신저로 쪽지 남기세요'라는 식으로 대응해주려면 이것 또한 얼마나 성가신 일인가. 그리고 다른 팀에 비슷한 또래 키우는 워킹맘들은 육아시간을 사용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 팀 직원만 육아시간 자주 사용한다고 하면 '이쪽 팀은 업무가 한가한가, 저쪽 팀의 업무가 과중한가'라고 비교하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 팀장님은 보장된 제도이니 적극 사용하라며 제도는 자꾸 활용해야 정착된다고 다독여 주셨다.( 멋진 팀장님 감사합니다. ㅜ.ㅠ) 그렇지만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참 육아시간 사용한다고 말할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 다들 비슷한 또래 아이들 키우는 부모 공무원들은 모두 육아시간을 써라!라고 규정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대부분 엄마들이 육아시간을 사용한다. 아빠들이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 집 남편도 아이가 아픈데 내가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을 때 대신 데려가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 조퇴를 하지 육아시간은 사용하지 않는다. 육아시간을 사용한다는 걸 굉장히 '남자가 유별 떨며 애 키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도움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속해서 남의 자리를 대신해줘야 할 상황에서 받는 성가신 스트레스는 어찌해야 할까. '내가 왜 저 육아시간, 유연근무제 활용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줘야지, 그럼 그 보상은 뭐지'라고 당연히 따지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내 손에 쥐어지는 보상 없이 당연한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는 사람이 많을수록 저 제도들은 당초 취지와 달리 제대로 정착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제도를 백지화하기에는 너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워라밸과 일-가정 양립이라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진정한 제도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잘 만들었다!!


  내가 지금은 저 제도의 수혜자지만 조만간 반대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팀장이 돼서 직원들 간의 이런 불만이 나오게 되는 상황이라면 어떤 식으로 조율을 해줘야 할까. 이런 불만도 공론화되어 대책이 세워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잘 활용하는 제도로 뿌리내려 다수가 혜택 받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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