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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일신 Sep 28. 2022

공무원의 사계절

가을이 왔다. 전국의 단풍들이 곱게 물들고 관광지가 북적이는 그 계절. 그래서 지자체의 축제가 넘쳐나는 계절이다.(꽃, 단풍축제는 망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우리 지자체도 가을마다 열리는 축제가 있다. 이 축제 기간에는 직원들이 행사 지원을 차례로 나가야 해서 해당부서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대기상태이다. 축제 상황실 지원부터 주차장, 크고 작은 행사 등등 사람이 필요한 모든 부문에 직원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관광객이 방문하면 민원이 대량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각자 업무 분야에 따라 상대해야 하는 민원도 큰 폭으로 증가한다. 이런 시기에 주말 당직에 편성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전화받느라 귀에 피가 날 지경.


곰곰이 생각해보면 계절마다 비상상황(?)인 시기가 꼭 있다. 봄에는 건조한 대기로 인해 산불이 꽤 많이 발생한다. '산불이 발생해 몇 헥타르가 탔다~' 이런 뉴스가 바로 이 봄에 발생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될 무렵에 산에 풀도 자라지 않고 메마른 시기에 여러 사유로 작은 불이라도 옮겨 붙으면 큰 산불이 되기 쉽다. 산을 끼고 있는 지자체는 봄, 가을에 산불근무를 한다. 길을 가다 '산불조심'이라고 적힌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본 적 있다면 그 시기가 공무원이 산불 근무하는 시기이다. 처음에 공무원 시작할 무렵에 갑자기 주말에 산불근무를 해야 한다고 하여 우리가 불을 어떻게 끄냐고, 소방서에서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었다.


일단 산불 화염이 발생하면 소방서에서 출동하여 진압을 한다. 불이 더 커지면 산림청 소방헬기가 뜬다. 그리고 산불이 어느 정도 진압되면 지자체 공무원들은 밤새 잔불 정리를 한다. 산림부서와 기간 내 고용되는 산불진화대나 산불감시원분들(운영되는 명칭은 조금씩 달라진다), 해당 읍면 직원들이 비상이다.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면 살아 있는 잔불씨들이 아른아른 곳곳에 보여서 불씨가 되살아나 번질까 봐 노심초사해야 한다.(잔불씨는 몇 날 며칠을 가기도 한다.) 부서장님과 읍면장님 들은 전 직원 비상근무하라고 설레발(?) 치실 때가 있다. 타 부서 직원들은 크게 신경 안 쓴다. 그런데 산림부서나 해당 읍면 직원들은 현장에서 눈치껏 얼굴 도장 찍으며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사무실에 남는 자. 사무실에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정말 전화받느라 보고자료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관련 기관에서, 이웃 주민들이 너무 궁금해한다. 어디서 불났어요? 누가 불냈어요?  사무실에 있는 자가 어찌 현장 상황을 알겠는가. 그래서 우리도 열심히 전화한다. 현장 직원들에게 전화, 출동 소방서에 전화. 누구네 산이래요? 피해규모는요? 왜 불났대요? 누가 불냈대요? 보고자료 정리해서 만들어 윗선에 보고용 메일로 띄우고 현장에서 수시로 따뜻한 음료수 갖다 달라, 빵 사다 달라는 요구사항 챙겨야 한다. 사람들 배고프게 하면 욕 바가지로 먹는다. 그런데 가끔 일이 확 줄어들 때가 있는데 불이 난 산이 국유지일 때. 그때부터는 산림청 소관이라 지자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철수한다. 


예전 우리 부모님 어린 시절에는 산불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는 마른 장작이든 낙엽이든 싹 다 긁어모아 이 집 저 집 아궁이 불 때는 데 사용하느라 산에 남아도는 나뭇가지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온 산에 마른 낙엽, 지푸라기들이 넘쳐나 계절마다 통행로, 산길 정비하는 것도 예산이 들어간다. 지자체마다 산불감시원, 산불진화대 등 을 고용하여 산불방지 계도 및 적발 단속을 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산불 근무조를 편성하여 순서대로 주말 근무를 한다. 직원이 출근하면 초과근무로 수당을 지급해야 하니 예산이 들고 산불감시원을 고용해도 인건비 예산이 든다. 산불 계도 차량을 운영해도 예산이 들고 방재용품을 구입해도 예산이 든다. 산불이 나면 개인 소유의 산이든 공공 소유의 산이든 산불을 진압하고 복구하는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산천초목을 유지하는데 정말 많은 사회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름이 되면 장마와 태풍이 기다린다. 비는 너무 많이 와도 문제, 적게 와도 문제이다. 2020년에는 최장기간 장마를 기록하여 작물 생육이 좋지 않아 농작물의 피해가 심했었다. 이런 시기에 태풍이 와서 휩쓸고 가면 농업, 임업 관련 부서와 재난 관련 부서가 바빠진다. 읍면 직원들도 재해피해 민원 처리하느라 바빠진다. 사실 요즘 직원들 중에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직원들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농업, 임업 작물 피해조사가 시작되면 주민들은 장마 때문에 태풍 때문에 얼마만큼의 작물 피해가 발생했다고 피해 조사서를 제출한다. 읍면에 농업직렬로 농업분야를 제대로 아는 직원이 한두 명 있을까 말 까다. 그 직원들도 전 농업분야를 다 알지 못한다. 일반 행정직이나 타 직렬 직원들은 더 농업분야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피해조사대상은 너무 많아 읍면 전 직원이 마을별로 분담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관된 기준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직원들이 회의도 하고 서로 상의도 하며 재해조사를 실시하는데 최대한 노력해도 사람마다 기준이 약간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면 왜 어느 동네는 피해량을 이렇게 잡아주고 우리는 박하게 잡아줬느냐고 민원이 발생한다. 밤 농사 같은 임업분야는 밤 농작 면적이 워낙 넓다 보니 그 넓은 산을 다 돌아다닐 수가 없다. 몇 정이 되는 면적에 수많은 밤나무를 어찌 다 파악하겠는가. 그리고 밤송이가 태풍 때문에 떨어진 것인지, 그냥 떨어질 때가 돼서 떨어진 것인지 농사도 안 지어본 젊은 직원들이 어찌 알겠는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런 재해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침이 내려오면 열심히 찾아봐도 현장과 괴리가 커 곤혹스럽다. 


피해조사 후 시스템에 입력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때 누락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 수시로 확인한다. 나도 확인하고 너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예산이 확정되어 지원되는 금액이 정해지면 입력된 사항들과 금액들이 일치하는지 또 확인한다. 정말 열 번을 확인해도 부족하지 않다. 왜냐하면 피해 작물, 피해면적, 피해 정도에 따라 지원되는 지원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재해피해조사 후에는 항상 많은 민원이 기다리고 있어 이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직원의 작은 실수도 예방하여 최소화해야 한다. 사소한 실수로 직원들이 곤란해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위에서 언급된 지자체 행사가 많아진다. 그리고 행사+산불근무이다.(가을철 산불근무는 봄철에 비해 기간이 짧다. 봄철은 대부분 2월~5월까지이고 가을철은 10~11월까지 이다.) 그런데 이 일들이 내 업무가 아니라 우리 지자체의 일이다. 내 업무는 따로 있는데 이런 행사나 산불근무에 편성되어 지원을 나가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반갑지가 않다. 7년 전쯤 갑자기 도청 담당자가 업무 관련 자료를 긴급하게 요청하는 메신저를 보냈다. 행사 지원을 나가려고 일어났던 차에 본 메신저였고 바로 추출할 수 있는 자료도 아니고 해서 도청 담당자에게 다녀와서 저녁때 자료 보내드리겠다고 연락했더니 행사 지원보다 이 일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지자체 입장에서는 내 개인 업무보다 행사가 더 중요하다. 행사는 잔치상 차리고 손님을 초대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감투 쓰신 분들부터 담당자들까지 공을 많이 들인다. 우리 지자체 가을 행사를 진행하려면 축제 부서가 주축이지만 관련 관광지 관리부서, 축제장 인근 주차장 관리부서 등 행사에 연관된 부서도 정말 많고 예산도 많이 든다. 그리고 행사로 인한 소음, 불꽃놀이 폭죽 터지면 시끄럽다는 민원, 행사장에 노점 각설이라도 오면 인근 주민들 불만이 엄청난 민원 전화로 이어진다. 행사장 인근에 음식이 비싸네, 기념품이 비싸네 등등 홈페이지에 민원인 불만이 폭주한다. 이 시기에 해당 민원 관련부서에서 일일이 답변 다는 것도 하나의 업무이다. 공무원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과 안타깝지만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공무원도 보람을 느끼지만 그러지 못하는 일은 왜 해결해 줄 수없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만큼 또 설명해야 한다. 축제행사는 내 업무가 아니지만 관련 민원은 내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사와 직접 연관은 없어도 행사기간에는 전 부서가 긴장을 하게 된다. 그 긴장감이 맴도는 계절이 다가왔다. 올 가을도 무사히 지나가길.


아 그리고 겨울은 유일하게 여유로운 계절. 감기 조심하며 몸 관리 잘하고 해돋이 행사만 참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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