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운 골프

클라레 저그를 품은 브라이언 하먼의 사냥꾼 정신

by Dylan Kim

로열 리버풀 골프 클럽에서 열린 2014 디 오픈 챔피언십의 주인공은 로리 매킬로이였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유럽 선수 최초로 세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로 기록됐다. 2019년에는 셰인 로리가 토미 플리트우드를 6타 차로 따돌리며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다. 비록 잉글랜드 선수를 꺾은 우승이었지만, 영국 팬들은 같은 섬나라 식구인 로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9년 만에 다시 돌아온 2023년 로열 리버풀. 1992년 닉 팔도 이후 30년 넘게 끊긴 ‘잉글랜드인 디 오픈 챔피언’을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었다. 1라운드에서 토미 플리트우드가 공동 선두로 나서자, 갤러리들의 기대감은 빠르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딱 하루 만에 식어버리고 말았다.


키 170cm 남짓한 미국 선수 브라이언 하먼이라는 작지만 단단한 벽이 플리트우드를 막아섰다. 하먼은 2라운드부터 5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며 영국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갤러리들의 환호는 야유로 변했고, 선을 넘는 비난이 그의 가족을 향하기도 했다. 아이리시 선수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관대함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먼에게는 마치 원정길에 오른 선수가 홈 팬들의 잔인한 야유를 직면한 느낌이었을 터. 하지만 이런 야유는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고,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하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회상했다. 필드 위에서 맞는 거친 바닷바람과 소음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클라레 저그를 찾아 나서는 사냥을 이어갈 뿐이었다.



하먼을 상징하는 가장 논쟁적인 장면은 샷 직전 클럽 헤드를 끊임없이 흔드는 왜글이다. 중계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지루한 시간일지 모른다. 방송에서조차 왜글을 몇 번이나 하는지 카운트를 띄울 정도였다. 그러나 하먼에게 있어서 왜글은 활시위를 당기기 전 마지막 호흡에 가깝다. 그는 투어 초창기, 너무 빠른 템포를 제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췄고 그것이 왜글을 하게 된 습관이 되었다. 사냥꾼이 숨을 죽이고 사격의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근육의 긴장을 푸는, 바로 그 치열한 정적인 셈이다.


그는 실제로 소문난 사냥 애호가다. 비시즌에는 사냥 도구를 챙겨 숲으로 들어간다. 사냥감을 위해 몇 시간이고 침묵 속에 잠복한다. 그에게 사냥이란 단순한 살생이나 놀이가 아니다. 완벽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주변의 소음을 걸러내며, 오직 타깃과 자신 사이의 공기만을 느끼는 일. 오랜 시간 인내심을 몸에 축적해 왔다. 하먼은 어릴 적부터 터득해 온 숲에서 배운 기술과 전략을 코스 위로 옮겨왔다. 디 오픈에서 귀를 자극한 갤러리의 야유는 그저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불과했고, 지루한 왜글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적중시키기 위한 의식이었다.


투어에서 '도살자'라고 불리는 이유도 단순히 사냥을 즐기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 아니다. 디 오픈 대회를 접수한 하먼에게 당시 영국 타블로이드지에서 붙인 '호이레이크(로열 리버풀 GC가 위치한 지명)의 도살자'라는 별명처럼, 그는 사냥한 짐승을 직접 손질하고 요리해 먹거나 대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명을 취한 순간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책임진다. 이 태도는 골프와도 닮아 있다. 그는 한 번의 호쾌한 샷으로 박수를 받는 선수가 아니다. 대신 티샷부터 마지막 퍼트까지,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매듭지어야 할 책임으로 대한다. 사냥꾼에게 미완의 손질이 없듯, 하먼에게도 대충 넘기는 샷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첫 메이저 트로피를 미국이 아닌 잉글랜드에서 먼저 들어 올리게 된다.

현대 골프는 파워의 시대다. 이제는 3번 우드로도 300야드를 넘기는 선수들이 코스를 지배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하먼은 대표적인 드라이버 비거리 단거리 타자로 분류된다. 디섐보처럼 호쾌한 장타를 치는 게 아닌, 모리카와처럼 높은 정확도를 보여준다. 그가 쥐고 있는 골프채가 짧아질수록 정교함의 수치는 올라간다. 마치 장검을 휘두르는 장수들이 즐비한 전쟁터에, 날카롭게 벼린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뛰어드는 자객과 같은 모습이다.


비거리에서 오는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하먼이 택한 것은 정교함과 계산이다. 사냥꾼이 곰을 향해 돌진하지 않고 함정을 파듯, 그는 벙커를 피해 페어웨이 가장 안전한 지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린 위에서는 주어진 기회를 신중하게 여긴다. 그는 대회 동안 5피트 이내 퍼트를 45개 모두 성공시켰고, 퍼팅 이득 타수에서만 무려 +11.57타를 기록하며 필드를 지배했다. 메이저 대회라는 극한의 압박조차 사냥꾼의 평정심을 깨뜨릴 순 없었다. 그의 주 특기인 퍼트와 쇼트 게임은 링크스 코스를 공략하기에 특화되어 있었고, 6타 차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사냥꾼에게 수확이 없는 날은 실패가 아니다. 과정이다. 하먼은 메이저 트로피가 주어지지 않는 날에도 자신의 루틴을 버리지 않았다. 오른손잡이이면서 왼손 스윙을 택한 불편함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스타성 대신 생존성을 선택했다. 불리함 속에서도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다. 남들이 스윙 폼을 이야기할 때 공의 궤적을 고민했고, 남들이 비거리에 집착할 때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읽었다.


디 오픈 우승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근에 구입한 5만 달러가 넘는 새 트랙터로 잔디를 깎을 생각에 들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건 행운이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라는 것을. 수만 번의 왜글로 마음을 다잡고, 수천 시간의 고요 속에서 버텨낸 끝에, 이제야 활시위를 당길 시간이 왔다는 것을.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화려해지려는 시대에 기다림과 정교함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제 우리는 하먼의 왜글을 지루함으로 보지 않는다. 고요히 숨을 죽이고 지켜볼 뿐이다. 작은 사냥꾼이 정확한 궤적으로 목표물을 겨누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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