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은 선수를 지치게 한다

희미해져 가는 메이저 사냥꾼의 명성

by Dylan Kim

스포츠의 본질은 경쟁이다. 그리고 경쟁의 끝에서 기억되는 건 언제나 1등뿐이다. 켑카는 이 냉혹한 진리를 누구보다 일찍 깨달았다. 승리를 향한 집념을 모든 감정과 관계 위에 올려놓았고, 그 대가로 메이저 무대를 지배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다섯 번의 메이저 우승. 그러나 이 눈부신 기록 뒤에는 고독한 통제가 있었다.



켑카는 의도적으로 투어 선수들과 거리를 두곤 했다. 수많은 선수들이 모여 사는 주피터에서 그는 연습 라운드나 내기 게임에 가장 부르기 힘든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는 연습을 게을리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리듬과 감정을 흔들 수 있는 모든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관계를 깊게 가지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대회 전에도 그는 연습장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도 클럽하우스에 빠듯하게 도착해 몸도 풀지 않고 티 박스로 향하는 모습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결국 경쟁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켑카의 방식이었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코스를 공략하는 게임이다. 켑카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함께 플레이하는 선수들까지도 경쟁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그는 미스샷을 하더라도 표정으로 실수를 드러내지 않았다. 감정을 노출하는 순간 경쟁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코스 위의 변수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바람은 선수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소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향과 세기는 정교한 샷마저 쉽게 무너뜨린다. 켑카는 이런 변수들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설령 불운이 벌타로 이어지더라도, 그 반응 하나까지도 다른 선수들에게는 정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부분들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생각할 요소를 던져주게끔 만드는 철저한 계산된 플레이였다.


이러한 성향은 그가 우승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무기가 되었다. 더 큰 무대이자 심리적 압박감이 심한 메이저 대회를 정조준했다. 가장 중요한 메이저 시즌인 4월부터 7월.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늘 메이저 대회에 고정돼 있었다.

“메이저 대회가 우승하기 가장 쉽다”는 그의 발언은 도발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다. 183cm의 신장과 90kg에 육박하는 근육질 체구는 피지컬 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메이저 무대는 심리적인 압박이 극단적으로 커지는 자리다.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모두가 긴장으로 경직될 때, 감정을 배제한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는 선수만이 끝까지 남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준비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남들처럼 보는 눈이 많은 연습장에서 시간을 쌓아 올리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었다. 대회 전날에도 집에서 몸을 풀고, 거의 워밍업 없이 티박스에 서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연습장에서의 비교, 타인의 시선, 의미 없는 반복을 철저히 배제했다. 좀처럼 연습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내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적인 이미지를 즐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골프라는 게임에 과도하게 매몰된 선수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성향을 보여왔다. 집중해야 할 순간과 힘을 빼야 할 순간을 구분하는 능력은 2017 US 오픈에서부터 시작되어, US 오픈과 PGA 챔피언십 2 연속 우승이라는 서사를 써내려 왔다.


skysports-koepka-golf-pga-championship_4388445.jpg 켑카는 2018년 US 오픈에 또다시 우승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고, 2달 만에 PGA 챔피언십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4개나 획득한 약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보여준 켑카의 퍼포먼스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 충분했다. 47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켜내며 2018,19 시즌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정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릎과 엉덩이 통증은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고, 왕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정신적인 비용과 반복되는 부상은 메이저 대회에서 혹독한 값을 치르게 했다. 그러자 그는 돌연 PGA 투어를 떠나 LIV로 이적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켑카는 이러한 부상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게 LIV 골프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인생의 반려자인 제나 심즈와 결혼 소식과 함께 가정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마음도 내비쳤다. 그래서 LIV는 도피처라기보다 재정비의 공간에 가까웠다. 그는 더 이상 ‘증명해야 하는 선수’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LIV의 제한된 일정과 팀 기반 구조로 운영되는 포맷은 그에게 숨을 고를 시간을 제공했다.

0_GettyImages-1742852019.jpg 켑카는 LIV 골프에서 팀 Smash GC의 리더로 활약하며 팀 통산 3승, 개인전 5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선택은 완전히 빗나가지 않았다. 켑카는 LIV 무대에서 다섯 차례 개인전 우승을 기록했다. 2023년엔 LIV 소속 선수로서 최초로 메이저 우승자가 되었다. PGA 챔피언십이 스트로크 플레이로 전환된 이후 타이거 우즈(4승)와 잭 니클라우스(5승)에 이어 최초로 3승 고지에 오른 세 번째 선수다. 이 우승으로 여전히 큰 무대에서 우승 경쟁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이 순간만큼은 분명 전성기 시절 메이저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감각은 LIV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무뎌지기 시작했다. 2025년 시즌, 단 한 차례의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던 켑카는 계약을 1년 남겨두고 LIV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우선시하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다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결핍된 ‘경쟁의 농도’에 대한 갈증 역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매주 맞이하는 컷탈락의 위협과, 크게는 투어 카드를 놓고 사투를 벌이는 압박감. 그 불편한 긴장감이야말로 날카로운 경쟁 본능을 극대화해 왔던 걸 뒤늦게나마 깨달은 듯하다.


켑카는 곧바로 PGA 투어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투어는 ‘복귀 회원 프로그램’을 신설하며, 돌아오기를 원하는 선수들에게 제한적인 기회를 열어두었다. 그렇게 재정적 페널티를 감수하고, 일부 대회 출전을 허용받는 조건으로 다시 투어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커리어 초반, 유러피안 투어를 거쳐 PGA 투어에 입성하며, 오직 경쟁으로 자신을 증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과로 모든 의심을 잠재우며 투어를 호령했던 그 매서운 모습을 다시 한번 재현할 수 있을까.



집념은 선수를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힘은 언젠가 선수를 지치게 한다. 그 집념은 메이저 5승이라는 결과를 안겨줬지만 서서히 빛을 잃고 있다. ‘메이저 사냥꾼’이라는 타이틀이 희미해지는 것은 끝이 아니다. 변화의 신호에 가깝다. 그는 더 이상 오직 사냥만을 위해 움직이는 알파 독이 아니다. 이제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줄 가족과 함께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집념의 대가는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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