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골프 전설로 회자되는 이유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열린 메이저 대회 세 개와, 21세기의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까지. 타이거 우즈는 이 네 개의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했다. 서로 다른 해에 걸친 네 개의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은 ‘타이거 슬램’이라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위업은 단순한 연속 우승이 아니라 시대의 경계를 가로지른 상징적 사건이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지배했던 골퍼가 21세기의 첫 페이지까지 장악했다는 의미. 골프는 새로운 표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장면이 골프 역사에서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한 선수가 시대 전체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정의한 시기가 있었다. 그 중심에 1970년대의 잭 니클라우스가 있었다.
잭이 달성한 1970년대의 기록은 단순한 기록의 나열이 아니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비웃는 듯한 신화적 서사였다. 그는 메이저 무대를 자신의 스테이지로 만들었고, 언론은 그를 '황제'로, 때론 '기계'로 불렀다. 하지만 완벽 속에 새겨진 작은 균열과, 그로부터 시작된 추진력은 그의 위대함을 더 빛나게 한다. 1978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올해의 스포츠 인물'과 1980년 BBC의 '올해의 해외 스포츠 인물' 선정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장면이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잭은 메이저 40개 대회에 모두 출전했다. 컷 통과율은 97.5%. 단 한 번을 빼고 모두 주말 무대에 섰다. 이 기간 동안 탑 10에 35차례 이름을 올렸고, 여덟 번 우승했다. 골프 기록이라기엔 그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숫자들이었다.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운’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필연에 가까웠다. 1970년대 그는 적어도 메이저 대회에서 만큼은 실패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일한 오점으로 남은 경기가 있었으니, 1978년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이었다.
잭은 1962년 US 오픈에서 데뷔 첫 우승 타이틀을 메이저 대회에서 따내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대회가 열린 코스도 공교롭게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이었다. 당시 1라운드 1 오버파로 시작하며 아널드 파머와의 연장전 끝에 트로피를 거머쥔 것과 반대로, PGA 챔피언십에선 1라운드에서만 79타를 치며 주말 라운드 진출이 좌절되었다. 당시 기록과 탈락은 분명 재앙이었지만, 이 오점은 오히려 전체 그림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SI가 1978년 잭을 ‘올해의 스포츠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단순한 우승 때문이 아니었다. 그해 그는 골프의 성지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이로써 네 개의 메이저 대회를 각각 최소 세 차례씩 우승하는, 트리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완성했다. 하지만 1968년 PGA 챔피언십 이후 정확히 10년간 메이저에서 컷 탈락 없이 달려온 그가 PGA 챔피언십에서 넘어지고 말았지만, SI는 이 ‘흠집’을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미학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커버 사진 속 잭은 US 오픈 트로피, 마스터스 트로피, 클라레 저그, US 아마추어 트로피 그리고 PGA 와나메이커 트로피까지 모든 메이저의 상징과 함께했다. 그 모습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완벽함이 아니라, 그 완벽함을 관통해 온 시간 자체에 대한 찬사였다. 서른여덟의 잭은 이미 톰 왓슨이나 리 트레비노 같은 신예와 강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SI는 PGA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단 한 번의 컷 탈락보다, 70년대 전체를 관통한 그의 지배력에 더 큰 점수를 주었다. 이로써 아널드 파머, 켄 벤투리, 그리고 숙명의 라이벌 리 트레비노에 이어 골프 역사상 네 번째로 ‘올해의 스포츠 인물’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지배력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다. 1979년의 잭은 다소 뒤늦게 찾아온 슬럼프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렸다. PGA 투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1967년부터 이어져온 라이더컵 출전에 처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골프계는 서른아홉에 접어든 그에게 에이징 커브가 찾아온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듬해 1980년, 마흔 살의 잭은 이전의 모든 논란과 의혹을 잠재웠다. US 오픈 첫날 63타를 몰아치며 당시 대회 최저타 기록(272타)으로 생에 4번째 US 오픈 챔피언 타이틀을 얻어냈다. 이어지는 PGA 챔피언십에서는 2위와 무려 7타 차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필드를 평정했다. 잭은 그의 코치와 지인들을 통해 짧은 시간에 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더 이상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트레이드마크였던 가파른 직립 스윙을 내려놓고 평평한 백스윙으로 변화를 택했다. 그가 갖고 있는 직업정신인 골프를 향한 열정과 집념, 그리고 인간관계를 통해 찾아온 슬럼프를 터닝포인트의 해로 만들었다.
영국의 BBC는 이 극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고 그를 ‘올해의 해외 스포츠 인물’로 선정했다. 당시 윔블던을 지배하던 비외른 보리나 존 매켄로 같은 테니스 스타들을 제치고 중년의 골퍼가 선정된 배경에는 마주한 어려움을 극복한 의지와 뛰어난 활약이 있었다. BBC는 70년대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80년대로 연장시킨 그의 의지에서 인간 승리의 서사를 발견했고, 대중은 골든 베어에게 기꺼이 경의를 표했다.
타이거 우즈가 20세기와 21세기를 성적으로 잇는 다리였다면, 잭 니클라우스는 1970년대의 완벽함과 1979년의 균열, 그리고 1980년대의 인간 승리를 잇는 정신적 지표였다. SI와 BBC가 각각 다른 연도에 그를 선택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한 시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정점에 오른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까지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