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제이슨 데이
로리 매킬로이가 2014년 8월부터 약 1년간 이어온 독주 체재를 끊은 주인공은 스물한 살의 젊은 미국인, 조던 스피스였다. 그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역사적인 스코어로 우승했고, 여름에는 US 오픈까지 제패했다.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도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벌이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근접할 만한 도전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전설의 반열에 오르려는 그에게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투어의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다. 골프계가 스피스의 대기록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어느 호주 출신 골퍼가 판을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6차례 대회 출전 중 네 번의 우승컵을 쓸어 담았다. 휘슬링 스트레이츠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는 메이저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20언더파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기록했다.
2015년의 시작이 조던 스피스였다면, 그 끝을 지배한 선수는 제이슨 데이였다. 그의 짧고도 강렬했던 전성기는 필드 위에서 군림하던 가장 무서운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제이슨 데이의 눈부신 성적과 우승은 갑작스러운 행운이 아니었다. 데뷔 이후 출전한 20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 3회를 포함하여 톱 10 진입만 9회라는 수치를 보여주며 우승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플레이에 안정감을 찾아가며 큰 무대에서 두각을 보였다. 특히 데이가 보여준 그린 주변에서의 쇼트 게임과, 그린 위에서 퍼트 감각은 타수를 줄이거나 지키기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된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우승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2011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그랬다. 선두 자리를 붙잡고 있던 매킬로이가 마지막날 7타를 잃으며, 조용히 타수를 벌어오던 찰 슈워츨이 깜짝 우승을 거머쥐었다. 2라운드부터 2위 자리를 지키던 데이는 결국 애덤 스콧과 함께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 달 뒤에 열린 US 오픈, 마스터스의 악몽을 털어낸 매킬로이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필드를 지배했고, 16언더파라는 기록과 함께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2013 US 오픈도 역시 저스틴 로즈의 첫 메이저 우승을 위한 순간이 되었고, 데이는 또다시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흥미롭게도 그의 세 번의 메이저 준우승은 모두 누군가의 첫 메이저 우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리였다.
데이에게 메이저 우승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5년 US 오픈 2라운드 마지막 홀, 9번 홀 그린 주변 벙커로 향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이석증 증세로 필드에 고꾸라졌다.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지만, 의료진 도움으로 플레이를 마쳤다. 이러한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주말 라운드를 무사히 마치며 공동 9위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골프계는 '몸이 문제라면 메이저는 힘들지 않겠나' 하는 우려를 쏟아냈지만, 데이는 오히려 그 장면으로 자신의 강인함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201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데이의 상승세는 단순하게 '좋은 시즌'으로 표현하기 아까울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디 오픈 챔피언십에선 3명의 공동 선두 선수들보다 1타가 부족해서 조던 스피스와 사이좋게 공동 4위에 올랐다. 곧바로 다음 대회인 RBC 캐나다 오픈에서 버바 왓슨을 1타 차로 제치고 시즌 두 번째 우승을 신고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데이는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거운 기세로 필드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US 오픈을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 톱 10 행진을 이어가던 데이는, 마침내 2015 PGA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의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은 여러 기록을 함께 남겼다. 최종 합계 20언더파는 메이저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기록이었고, 동시에 약 20년 만에 탄생한 호주 출신 PGA 챔피언십 우승자였다. 그동안 그렉 노먼과 애덤 스콧조차 정복하지 못했던 대회이기도 했다. 데이는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스피스를 3타 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가 정점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현재까지도 스피스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데이가 기록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한 탓에 준우승에 그친 스피스는 여전히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남겨둔 채 기록의 문턱 앞에 서 있다.
기세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메이저를 접수한 데이는 곧바로 이어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도 압도적인 지배력을 과시했다. 첫 대회 바클레이스에서 6타 차 대승을 거두고, BMW 챔피언십에서는 1라운드 10언더파를 몰아치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완성했다. 그 순간 생애 첫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당시 4개 대회로 진행된 플레이오프에서 1위, 공동 12위, 1위 그리고 공동 10위 성적으로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다.
실제로 이 시기 데이의 골프는 통계적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이어진 시즌에도 무결점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2015-16 시즌 그가 기록한 스트로크 게인드 퍼팅 데이터인 1.13은 PGA 통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치다. 매 라운드 퍼터 하나만으로 경쟁자들보다 평균 1.13타를 앞서 나갔고, 한 주당 약 4.5타 가까이 벌어들였다. 2위 조던 스피스가 0.758에 그쳤을 정도니, 이 숫자는 얼마나 차원이 다른 골프를 구사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를 세계 정점에 올려놓았던 폭발적인 힘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체를 단단히 고정한 채 상체를 뒤트는 파워풀한 스윙은 척추가 견딜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이미 넘어서 있었다. 2016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두 경기에서 연달아 경기를 기권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그의 커리어는 수년에 걸쳐 천천히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세계 랭킹 1위에서 175위까지 곤두박질치는 과정은 한 시대를 지배했던 천재의 몰락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했다.
한 때 역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애덤 스콧은 '제이슨 데이는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를 연상시킨다.'라고 말할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는 그 전설적인 행보를 뒤쫓기 위해 자신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장타와 정교한 퍼팅을 얻기 위해 자신의 미래 건강을 미리 가불해 썼지만, 끝내 부상이라는 고지서 앞에 상환은 실패하고 말았다. 타이거를 닮고 싶었던 열망이 결국 자신의 전성기를 너무 일찍 연소시켜 버린 셈이다.
10년 전, 제이슨 데이는 분명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골퍼 중 한 명이었다. 장타와 쇼트게임, 그리고 퍼팅까지 모든 영역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의 영광으로 남아있다. 마치 올림픽 성화처럼 짧게 타오르고 사라진 불꽃이었지만, 그 찬란함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