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 스튜어트를 입는 선수

브라이슨 디섐보는 왜 특이한 모자를 쓰나?

by Dylan Kim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영국 신사들은 니커보커 팬츠와 무릎까지 오는 하이삭스를 신고, 셔츠와 타이 그리고 조끼에 모자는 플랫 캡을 쓰고 골프를 쳤다. 상류층이 즐기는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었던 당시엔 복장규정이 엄격했었던 시대인지라 전통을 따르는 게 당연했었다. 1940년대 들어서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하의가 긴 바지로 대체되었으며, 60년대에 들어서는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 같은 선수들이 슬랙스와 폴로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70년대부터는 기능성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폴리에스터 소재 의상들이 등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복장이 가벼워지고 한껏 멋 부리기 좋은 옷들은 점점 잊혀가는가 싶었다.


1900년대 초반 골프 복장


1987년, 골프장에 특이한 복장을 한 선수가 나타났다. 헐렁한 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 그리고 챙이 평평한 모자를 쓴 모습은 당시의 복장 규정과는 사뭇 달랐다. 주변 선수들이 폴로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경기에 나섰지만, 그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이 선수의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남들과는 다른 복장을 입어야 된다고. 나풀거리는 바지는 호주 스포츠 선수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전통적인 복장이었던 플러스-포 스타일을 재현했다.

페인 스튜어트는 20세기 초반에나 볼 법한 빈티지 스타일의 복장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에게 복장은 단순한 멋이 아니었다. 골프의 전통을 기리는 동시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그는 매 대회마다 형형색색의 니커보커와 하이삭스를 매치하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독특한 스타일은 NFL과 계약으로까지 이어졌고, 대회가 열리는 지역 NFL팀 색상을 복장에 반영하며 지역 팬들과 소통했다. 스튜어트에게 복장은 곧 퍼포먼스였고, 골프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철학의 일부였다.


1990년대 스튜어트는 골프계의 패셔니스타였다

1999년 6월,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U.S. 오픈은 스튜어트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필 미켈슨과의 치열한 접전 끝에 18번 홀에서 파 퍼트를 성공시키며 1타 차 승리를 거뒀다. 그의 두 번째 U.S. 오픈 우승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이었던 미켈슨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태어날 아이에게 행운을 빈다. 아버지가 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는 말을 건네는 장면은 오늘날까지도 골프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된다.


그로부터 4달이 지난 10월 25일, 스튜어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42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골프계를 깊은 슬픔에 빠뜨렸다. 동료 선수들과 팬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사고 직후 열린 투어 챔피언십에서는 그의 오랜 친구였던 스튜어트 애플비가 스튜어트의 시그니처 복장인 니커보커 바지와 플랫 캡을 입고 경기에 나섰고, 많은 선수들 또한 평소와는 다른 복장을 통해 그를 기렸다.

그리고 파인허스트 No.2의 18번 홀 그린 뒤편에는, 당시 스튜어트의 우승 세리머니를 재현한 동상이 세워졌다.


1999년 U.S 오픈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의 페인 스튜어트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운동에 소질을 보였던 브라이슨 디섐보는 16세가 되던 해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뛰어난 성적과 골프 커리어를 바탕으로 텍사스에 위치한 남부 감리교 대학교(SMU) 물리학과에 진학한다. 골프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던 당시, 학교의 운동 팀 SMU Mustang 소속으로 출전한 미국 남자 대학 골프 챔피언십 개인전 부문에서 학교 역사상 최초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체육관 벽화에 그려진 페인 스튜어트를 발견한 그는, SMU에 진학한 것, Mustang에 들어간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대학 진학 전부터 페인 스튜어트가 골프에서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디섐보에게는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던 부분이 동문으로 채워지고, 그를 우상으로 여기기에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플랫 캡을 쓰고 경기하는 브라이슨 디섐보


2016년, 디섐보는 본격적인 PGA 투어 생활을 위해 프로로 전향했다. 데뷔 초기부터 ‘괴짜 과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 골프를 접근하는 방식까지 특이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일관성 있는 스윙을 위해 모든 아이언의 길이를 동일하게 세팅했다. 스윙 아크와 체중 이동까지 철저히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인만의 스윙을 만들어갔다.

그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철학을 팬들과 공유하기 위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인플루언서, 선수 그리고 미국 대통령까지 초대하며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실전 노하우, 다양한 챌린지 등 직접 라이브 방송까지 하며 소통하는 모습은 ‘괴짜’라는 이미지 뒤에 감춰진 친근한 면모를 보여줬다.


그런데 사실 그는 팬들에게 친근하고 다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흔히 말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2022년 11월, 아버지인 존 디섐보는 오랜 기간 당뇨 투병 끝에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디섐보에게 처음으로 골프를 가르친 사람이자 코치였으며, 학창 시절부터 PGA 투어 8승을 거둘 때까지 모든 경기를 지켜봐 왔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감정적인 공백과 더불어 삶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확고한 자신만의 골프 색깔과 철학을 바탕으로 공격적이고 비거리 중심이던 플레이 스타일을, 건강과 균형을 중요시하며 골프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보살피게 만들었다. 이로써 한층 더 성숙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고, 현장을 찾는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되었다.


1999 U.S 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페인스튜어트와 2024 U.S 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브라이슨 디섐보


2024년, 파인허스트에서 로리 매킬로이를 꺾으며 두 번째 U.S 오픈 우승을 거둔 디섐보는 페인 스튜어트의 실루엣이 새겨진 볼 마커를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이며 "페인 스튜어트가 여기 있다!" 라며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며 그를 추모하는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시상식에서는 경기 내내 골프백에 걸려있던 플랫 캡을 쓰며 다시 한번 스튜어트와 그의 아버지를 기리는 포즈를 취했다. 그날은 또한 아버지의 날이었고, 모든 아버지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이 우승 트로피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또한 SMU에 진학한 이유와 스튜어트를 따라 플랫 캡을 쓰는 이유까지 언급하며 다시 한번 그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쳤다. 끝으로 팬들과 소속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단지 트로피를 든 챔피언이 아니었다. 골프의 전통을 기억하고 기리는 진정한 후계자의 모습이었다.


2024 U.S 오픈 경기 중 브라이슨 디섐보 모자에 붙은 페인 스튜어트 볼 마커




겉보기에는 전통과 과학, 과거와 미래처럼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겐 의외의 접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플랫 캡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았고, US 오픈을 두 차례 우승했으며, 그 두 번째 우승이 모두 파인허스트에서 이뤄졌다. 또한, 두 사람 모두 SMU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은 골프를 통해 본인만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인물이다.


아쉽게도 2022년 이후로, 플랫 캡을 쓰고 필드에 나선 디섐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는 경기력 향상과 성장을 위해, 자신에게 더 맞는 방향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라이더 컵에서 그는 팀 융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시그니처 모자 대신 팀원들과 같은 야구모자를 선택했다. 그 결정은 이듬해 팀 단위 포맷으로 진행되는 LIV 골프 이적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젠 Crushers 팀의 캡틴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비록 더 이상 그가 오랫동안 써왔던 모자를 볼 수는 없지만, 페인 스튜어트를 향한 그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볼 마커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선수의 정체성을 표현하던 모자는 세상을 떠난 우상을 향한 존경심이 되었다. 그가 다시 시그니처 모자를 쓰고 경기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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