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정신
인류의 기술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진화 속도보다 빨랐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기, 증기기관과 초기 자동차의 등장은 마부들에게 생존의 위협이 되었다. 그들은 도로 안전과 말의 위험을 이유로 기술을 막았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걸어가도록 한 적기조례(Red Flag Act, 1865)를 제정했다. 인간의 욕망과 속도로 기술을 제어한 것이다. 결국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기술을 거부한 선택은 쇠퇴의 길로 들어선 일자리를 잠시 지켰을지 모르나 미래를 위한 선택은 되지 못했다.
오늘날 로봇을 둘러싼 논쟁도 인간과 기술 간의 관계설정에 닿아있다. H자동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현장 도입을 추진하자 회사노조는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 도입은 불가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고용 불안과 현장 안전에 대한 우려는 기술과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이 갈등의 본질은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로봇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지점에서 떠올려야 할 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다. 홍익인간은 단군 신화에 뿌리를 둔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치관이자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인간교육의 목표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명시하며, 모든 국민이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역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합의된 국가적 선언이다.
산업혁명기의 마부들이 기술 자체를 적으로 돌렸다면 오늘의 노조는 기술 전환의 공정성과 책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로봇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위험한 노동을 맡는 새로운 동반자다. 문제는 자동화로 창출되는 생산성의 이익이 소수의 효율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재교육과 전환배치, 새로운 직무 창출로 사회 전체에 환류될 것인지에 있다.
따라서 로봇시대의 해법은 찬반의 대립이 아니라 거버넌스에 있다. 국가와 기업, 노동이 함께 참여해 기술 도입의 원칙과 속도, 안전 기준을 합의하고, 노사는 성과를 인간 역량 강화로 되돌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홍익인간 정신에 부합하는 과학기술의 길이기도 하다.
영국의 적기조례는 기술을 막아 미래를 잃은 선택이 되고 말았다. 로봇시대 기술강국을 지향하는 선진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 과학기술이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때 우리는 기술 경쟁과 인간 가치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