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날 신혼 초 업자시절, 만오천 원을 벌기 위해 모 신문사에 투고했던 수필입니다. 마눌에게 수년간 시달렸던 기억이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빨간 장미꽃이 피던 어느 해 봄날, 친구의 소개로 그녀를 만나는 순간 나는 천사 같은 그녀의 모습에 한순간 반해버렸다. 생머리에 검은 옷을 좋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군복무 중으로 대구에서 하숙하고 있었고, 뚜렷이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는 외로운 시기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의 소개로 이루어졌는데 데이트는 주로 찻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은 후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는 거였다. 평소에 말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는 나였지만 그녀를 만나는 순간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주눅이 들었던 거라고 훗날 느끼게 되었다. 하여간 찻집에서나 술집에서나 그녀의 얼굴만 보면 할 말을 잊게 되었고, 그녀와 만나는 날이 되면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줄 때면 그녀는 나에게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 사과나 초콜릿을 사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과는 10개 이상, 초콜릿은 50개 정도를 사주었다. 그 당시 나의 봉급은 15만 원쯤 되었는데 전혀 아깝게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장녀로서 집에서 기다릴 동생들까지도 생각하는 성숙한 여인이었다.
그녀와 만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1차로 술집에서 맥주를 1병 정도 각각 마시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2차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주장대로 만날 때마다 2차를 가게 되었는데 그녀의 주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는 불과 몇 시간 동안에 맥주를 한 박스를 마셨고 나는 그중 두 세병 정도를 도와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처럼 6병의 소포장이 아닌 업소용 큰 병의 한 박스를 말이다.
나의 아버님께서는 젊은 시절 술로 인해 내가 9살이던 41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내력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는 술을 금했고 나도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량이 신통치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청난 그녀의 주량에 처음에는 신통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고역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별 말없이 맥주를 마시던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하여간 나는 그녀의 손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술도 못 마시고 그녀 앞에서 주눅 들어 그녀가 취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엔가 매우 추운 날로 기억되는데 그녀가 학교에서 일직 근무를 한다며 나를 불렀다. 아마도 그녀가 방학중였던것 같다. 나는 대구 시내 유명 빵집에 들러 고급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숙직실에서 그녀와 함께 일직을 했고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여간 그 당시에 보기 드문 신 사고를 가진 여성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결국 나에게는 주량을 늘려 그녀와 대작하는 일이었고 매일 술을 늘리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녀와의 소중한 만남을 위해, 그녀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어쩌면 그녀에게 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주량을 늘려야만 했다. 그러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주량이 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다음 해 여름이 되었을 때의 어느 날, 그날도 어느 술집에서 2차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인성 씨 이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겠군요’ 하는 것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이었다. 사실 그녀를 만나면서부터 언젠가 차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나마 수개월씩이나 버텨오고 있던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녀와 헤어져 집에 오는 길은 정말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미녀와 추남, 주류와 비주류,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말인가? 유행가의 가사가 내 마음에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남자 녀석이 술을 못 마셔 여자에게 차이다니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 들러 4홉짜리 소주를 샀다. 오늘 내가 이 소주를 다 마시지 못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동네 입구에 있는 다리 밑으로 갔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다리 밑으로 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땅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갈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너 잔을 마셨을 때 더 이상 마실 수 없었고 다리 밑에 술병을 집어던져 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지난번 어느 신문에 우리나라 성인 남자가 작년에 소비한 맥주는 1인당 평균 119병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그렇게 술을 마시지? 지난해 내가 마신 맥주가 몇 병이나 될까를 계산해 보았다. 약 500병이나 되었다. 음주단속에서 두 번이나 불었던 기억을 되살렸다. 사실 요즘 매일 저녁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올 정도가 되었다. 자주 마시는 데다 어느 정도 취할 때까지 마시는 습관이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술을 가르쳐준 여인이었다. 나는 지금도 술을 마실 때면 그녀와 같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그리고 횡설수설하지 않고 조용히 마신다. 다시 그녀를 만나 술잔을 기울일 날이 있다면 이젠 상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