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방식대로
매년 10월 올림픽공원에서 하는 음악 페스티벌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연중행사로 생각하고 누가 출연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공개되는 얼리버드 예매권을 구매해 참가하던 때가 있었다.
올림픽공원 안의 실내/외 공연장에서 동시에 다른 팀들이 공연을 하고 타임테이블에 맞춰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하는 공연장을 선택해서 보면 되는데
메인 스테이지인 잔디마당에서 돗자리를 깔고 한참을 놀다가 다른 공연장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몇 팀의 공연을 보다가 다시 메인 스테이지로 돌아와 돗자리를 펴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챙겨갔던 돗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짐이 몸뿐이라면 돗자리가 없어도 괜찮지만 페스티벌의 생명인 맥주 또는 와인을 음악과 함께 곁들이려면 돗자리는 필수다!)
언제부터 없었는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당연히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우선 잔디마당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나까지 총 세 명이 같이 갔었는데 동행인 두 명은 발 디딜 틈 없는 돗자리 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무대가 보이는 각도상 우리가 앉았었던 자리쯤으로 추정되는 현장(?)으로 투입했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멀찍이 서서 우리 근처에 앞, 뒤, 옆에 앉았던 사람들을 힌트 삼아 눈으로 수색을 했다.
'나도 직접 들어가서 찾아야 하나?'
'친구들이 나만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감정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또한, 고민과 생각이 많아 어떤 일이든 일단 뛰어들기보다는 가능한 많은 경우의 수와 리스크를 고려한 다음 행동에 옮기는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만 A to Z까지 하다가 정작 시작도 못해 본 일들도 많다.
신중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일을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서 그런 적도 있지만 귀찮고, 두려워서, 하기 싫어서 등 사소한 이유로 하지 않을 명분을 만드려고 할 때도 많았다.
이곳에 글을 쓰는 것도 작가 승인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나고 해도 바뀌었는데 해야지 해야지, 언젠가는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제야 첫 글을 쓴다.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라던데..'
'누가 내 글을 보기라고 하겠어?'
'지금 돈 벌기도 바쁜데 글이나 쓰는데 보낼 시간이 있니?!'라는 사사로운 고민들과 더불어 무엇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가장 무겁게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려고 시도하는 이유는 기록의 힘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자기계발이든 마케팅이든 국적과 분야를 불문하고 무수히 많은 책들에서 기록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강조하지만 내가 체감해 보지 않아서인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와닿지 않았다.
해보지를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하지만 내 일기장은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내가 죽어서나 유품으로 발견될 테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을 테니 혼잣말이라기엔 조금 커서 은근히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혼잣말 같은 느낌으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은 나를 위함이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는대도 괜찮지만 혹시나 내 글이 나의 울타리를 넘어 비슷한 감정이나 경험,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닿아서 공감이나 위로나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이 이어진다면 좋겠다.
다시 페스티벌 돗자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그날 돗자리를 찾아낸 사람은 바로 나다.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모든 정황을 다 지켜보다가 남의 돗자리 밑에 깔려있던 우리의 돗자리를 포착한 뒤 움직여 찾아냈다. 내 방식대로.
때로는 일단 뛰어들어야 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긴 생각 끝에 행동으로 옮겨여야 할 때도 있다.
어떤 게 맞는지 정답이 없으니 어떤 게 틀리고 잘못된 건지 오답도 없다.
내가 살면서 하고 있는 끊임없는 선택들이 단순히 잘하고-못하고, 맞고-틀리고로 구분되어 남겨지지 않도록 그만한 선택을 한 이유와 결과에 대해 기록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