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
봄가을, 구두 안에 신는 얇은 덧신은 종종 구멍이 난다.
덧신이 너무 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재가 얇은 신발을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존재감을 뽐내는 내 신체적 구조 탓도 있다.
덕분에 덧신은 물론 양말도 가끔 구멍이 나는데 나는 바느질이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다. 떨어진 단추도 꼭 필요한 위치에 붙어있던 게 아니면 그냥 두기도 하고, 세탁을 맡길 때 단추 수선까지 함께 의뢰하곤 한다.
이런 내가 아는 덧신이 구멍 났을 때 제일 잘 꿰매는 방법은 그날은 친정집으로 퇴근해서 덧신을 벗어두고 오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상상초월의 후레자식 같은 답안이다. 그런데 내가 가끔 이렇게 한다.
친정집과 우리 집은 지하철로 세정거장 거리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하셨는데 그날 먹어야 맛있는 메뉴라면 나에게 친정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겠냐고 물어보신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빠가 차로 태워다 줄 거라는 달콤한 조건까지 잊지 않으신다.
가깝다면 정말 가까운 거리 이건만
신도림역에서 내려 5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우리 집에 갈 것이냐,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 더 가서 친정집으로 갈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신도림역에서 김밥이나 햄버거를 하나 사들고 '내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도 늦는 날이면 친정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집밥을 먹고, 오랜만에 부모님과 시간도 보내면 참 좋을 텐데.
나 역시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너무 고됐던 오늘 회사에서의 시간이 내 마음까지 마비시켜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저 편히 쉬고자 내 집으로 가는 결정을 하게 된다. 혼자 김밥 한 줄 먹는 것보다는 친정집에서의 저녁이 훨씬 건강하고 맛있고 즐거운 식사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럴 때 구멍 난 덧신이나 양말은 좋은 핑계다.
“오늘 원 서방 늦니? 갈비 했는데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갈래?”
“좋아! 갈게요~ 엄마 나 오늘 덧신도 빵꾸났어!”
엄마에게 내 구멍 난 덧신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친정집에 가는지 안 가는지가 중요할 뿐.
내가 집에 간다는 말을 들으시면 보온 상태로 있던 밥을 드시려다가도 아마 새 밥을 안치실 것이다.
불효녀와 효녀 사이 어디쯤이 있다고 하면 나는 아마 효녀 쪽에 살짝은 기울어있을 거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부모님 케어에 유별나다는 말도 듣는다.(부모님이 아프셔서 가족 돌봄 휴직을 1년 냈었고, 명절과 여름휴가 때 부모님과 함께 여행 다닌다는 이유로) 내가 왜 이런 불효자식 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친정집에 가면 덧신에 난 작은 구멍으로 최대한 힘을 주어 발가락을 내민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내 알감자 볼래?”
이런 철없는 소리를 하면서 저녁 준비로 분주한 엄마를 웃게 만드는 게 좋아서가 첫 번째 이유다.
아빠까지 계시다면 알감자를 친절하게 코앞까지 배달해드려 딱밤이라도 한 대 맞아야 막내딸의 소임을 다 한 것 같다.
구멍 난 덧신은 벗어두고 엄마 밥을 맛있게 얻어먹은 뒤 집에 돌아오면 다음에 언젠가 친정부모님을 뵐 때 엄마는 깨끗하게 빨아서 구멍을 감쪽같이 꿰맨 덧신을 가져다주신다.
세월이 지나도 꼼꼼한 엄마의 바느질은 날 기쁘게 한다. 엄마의 시력도 손끝의 감각도 덧신의 작은 구멍을 꿰매 주시기에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새로 태어난 덧신을 양손에 끼고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든지 손으로 걷는 리액션 정도는 필수다.
"오~ 당최 어디에 구멍이 났었는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10년은 더 신겠습니다!!"
"으이구, 그걸 왜 10년이나 신어~"
소모품에 가까운 얇은 덧신을 10년이나 더 신겠다는 딸의 쉰소리에 피식 웃는 엄마와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어릴 적 겨울방학이면 엄마의 손에서 오빠와 나의 장갑, 목도리, 모자와 같은 것들이 뚝딱 생겨났다. 코바늘 뜨기로는 구멍 난 옷의 수선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던 나의 바지 기장까지도 늘려주셨다. 어린 내 눈에는 엄마의 뜨개질이 마술과 같이 대단해 보였고, 실제로 그때 작품들은 지금 봐도 놀랍다.
지금은 어깨도 아프고 눈도 쉽게 피로해지시니 뜨개질은 시작도 안 하시지만, 가끔 몇 땀 짜리 바느질에서도 느껴지는 엄마의 꼼꼼함이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