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한 편 드라마 같은 : 안갯속에가려진 삶

시선의 양면성


젊은 날의 제게 새벽녘 안개라는 의미는 갈 길을 막아서는 ‘불안’이자 ‘답답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칼에 서리가 내려앉은 지금, 저는 이 안개를 보며 오히려 평온함을 느낍니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비로소 내 발밑의 흙냄새와 찻잔의 온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것이 제가 세월을 지나오며 배운 인생의 양면성입니다.


​비워짐이 가르쳐준 뜻밖의 충만함
​나이가 든다는 것은, 평생 손에 꼭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놓아주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꼿꼿했던 기운이 예전 같지 않고, 소중했던 기억들도 가끔은 안개 너머로 흐릿해지곤 하지요. 드라마로 치자면 화려한 주연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는 무대 뒤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 묘한 일이지요. 손을 비우니 비로소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잃어간다는 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공간을 넓혀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꽉 채워졌을 때는 보이지 않던 여백이 생기자, 그제야 타인의 아픔이 들어오고 자연의 변화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상실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채워짐이었습니다.


​슬픔의 뒷면에서 발견한 찬란함
​인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가장 지우고 싶었던 아픈 장면들을 가만히 돌이켜봅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비극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 본 그 장면의 뒷면에는 예상치 못한 ‘성숙’과 ‘깊이’가 숨어 있었습니다.
​슬픔이 깊었기에 아주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고,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어보았기에 산장을 찾는 이들의 고독을 조용히 안아줄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제 삶의 어두웠던 그림자들은 사실 저라는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들의 드라마는 여전히 방영 중입니다
​시니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생은 저물어가는 해가 아니라, 내일을 정성껏 준비하는 노을과 같습니다. 노을은 낮의 치열했던 열기를 식혀주고, 우리에게 깊은 안식의 밤을 약속해 줍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절정을 지나 결말을 향해 갈수록 더 깊은 여운을 남기듯, 우리 인생의 후반전 또한 그 어떤 순간보다 밀도 높은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창가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저만의 드라마를 써 내려갑니다. 비극과 희극, 상실과 소유가 교차하는 이 무대 위에서 저는 더 이상 완벽한 결말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이 양면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균형을 온 마음으로 즐길 뿐입니다.


​여러분의 드라마는 지금 어떤 장면을 지나고 계시는가요? 혹시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그 뒷면에 곧 나타날 찬란한 빛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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