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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10. 2022

나의 여름 방학은

나에게 방학은

그간 3년의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방학이 알차게 기억되며 끝난 적이 없었다. 나에게 방학은 종강을 기다려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의 연장 속에서 다음 학기를 기대하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실용주의적으로 살자고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이제껏 이룬 성취는 이 대학교에 온 것 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다 정기적으로 받는 상담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소중한 친구 덕에 성취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초중고 장장 12년을 거치며 꿈에 바라던 대학 입시의 결과는 너무나 달콤했지만 되려 그 달콤한 결과가 너무나 큰 보상이었기에, 그 후로 어떠한 보상이 주어져도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점점 보상에 목말라갔다. 갈증은 결과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결핍의 감정으로 남아 어느 순간부터는 내 자기효용감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근래 깨달은 것은 그런 보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살면서 대학 입학과 같이 명시적이고 가시적으로 내 노력을 입증 받을 수 있는(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운이 따르지만; 사회적 운이나 정말 행운이나) 것은 없다. 


내가 목표로 하는 직업을 갖는다 해도, 그 직업인이 돼서 내 비전을 이뤄야하고 그렇다면 그 비전은 어떤 보상으로 명시화되고 획득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버리자.

고등학교 때 배운 얄팍한 윤리와 사상 지식을 꺼내보자. 어렴풋이 기억나는 학자는 미국의 실용주의 학자 듀이다. 그의 사상은 대강 이러했다. 어떠한 정체성은 '획득'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실천해나가며 체화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능력있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누군가 인정해주고 보상해줌으로써 끝나고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 살면서 좋은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해나가면 되지 않나.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좋은 구석이 있다면 어떤 실망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길 걸.


어쩌면 다시 안 올 

어느덧 3학년 1학기가 끝나간다. 나이는 스물 다섯, 끝맺어 놓은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한없이 들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마음이 급급해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번 방학은 조금은 특별하고 바쁘게 정신없게 보내보려고 한다.


총 3가지를 준비해보고자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라는 호칭은 굉장히 고민이 되는 호칭이긴 한데 마땅히 대체할 단어가 나에겐 아직 없다)들을 공부해보는 독서 소모임이다. 여성, 장애인, 퀴어 등등 관련된 책을 읽고 발제하고 얘기나누고 경험 공유하고 까지가 원래 내 계획이긴 했는데 함께 하는 분들이 열정이 넘치셔서 같이 퀴어 축제도 가고 시위도 가보고 이것 저것 함께 해볼까 한다. 아마 방학 간 가장 아끼는 모임의 사람들이 될 듯. 


두번째는 다큐멘터리. 어제 해방촌을 다녀왔는데 함께 간 친구와 각자의 집까지 6키로 넘는 거리를 걸어오며 '해방'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꾸리기로 했다. 방학 동안 상당히 바쁠 예정인 두 사람이지만 워낙 기획하는 것도, 추진하는 것도, 계획 짜는 것도 잘하는 두 사람이니까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게 당장 과제가 됐든, 고통스러운 인간관계가 됐든, 가족이 됐든, 진로가 됐든 무엇이든.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바쁘고 혼란스러운 20대의 두 친구가 꾸려갈 다큐멘터리를 기대하시라.


세번째는 아직 지원 기간도 아니지만 학내 언론사에 들어가보고자 한다. 예전에 2년간 홍보팀 산하의 기자단을 했었고 그 간 24개의 영상을 기획, 촬영, 편집했다. 이제는 새로운 언어로 가치관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기자 일이 나랑 잘 맞을지 시험해보는 시험 단계일 것도 같고. 


우리의 여름날을 낭비하지 말자구요

언제까지고 영원할 거 같은 여름날의 어둔 시간들. 바람은 선선히 불어오고 주변엔 어둠이 짙게 깔려 오로지 나와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즉흥적인 아이디어들을 하나 둘 내 손으로 꾸려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인다. 하고 싶은 걸 언제든 꺼내서 할 수 있는, 할 때는 지치고 힘들어도 돌아보면 쌓여있을 무언가를 위해서



오랜만에 너를 만나 얘길 나누니


어느새 다 커버린 모습이 보여


태양처럼 뜨거웠던 우리 마음은


무엇이 지치게 했나


어두운 밤 초록 나무 아래 그림자


한 손엔 차가운 맥주 한 캔 들고서


꿈결처럼 펼쳐질 내일을 그리며


마주 보고 웃던 너와 나


이 여름밤에 우리


흩어진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별빛 속을 달려보는 거야


영원속에 언젠가 다 사라진 대도


오늘 밤은


이 여름밤에 우리


어디든 상관없이


너와 함께 걷는 지금이 영원인 거야


두려움은 마주친 눈빛 뒤로 안녕


안녕


[여름밤의 우리], 전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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