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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10. 2022

우리에게 사랑은 비극이어라

당신은 몰랐으면 하는데요

당신은 몰랐으면 하는 말


정을 잘 붙이는 사람의 비애랄까. 쉽게 정을 붙이고 정을 주기 시작하면 상처 받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 당신은 날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나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잃어왔던 친구가 십 수명이다. 어찌보면 사람이 참 간사하다. 이런 국면을 여러 번 겪다보면 더이상 사람을 새로 알게 되고 지인이 되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서 더이상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강력한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사소한 거절의 신호만 보여도 주었던 정을 하나 둘 회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나중에 받을 상처를 미리 당겨서 예방하려 드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지인, 친구로 사귀는 건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논의들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릴 수 있다.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낱말들을 주고 받는다. 이미 익숙하던 공간을 새롭게 느끼고 짚어보지 않고 흘려보냈던 시간들에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한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직접 간 전시는 아니지만, 어느 전시의 한 벽면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다. "사랑은 때로 정치적이고 때로 공포스럽다." 처음에는 의미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점점 공감된다. 누군가와 세상을 조금이라도 포갠다는 것은 설레고 즐거운 일일 수 있지만, 그 세상이 나에게 떠나갈 때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내 영역들은 온전히 홀로서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고양이가 쓰다듬으려는 사람의 손을 밀어내듯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까워질 때 안간힘을 써가며 세상의 포개짐을 밀어내고자 했다. 사랑은 때로 정치적이고 공포스럽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길.


너부터보다 '나'부터


"그건 너가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붙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너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참 고운 친구가 말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명명을 하는 걸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 '좋은'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용되는 형용사. 누군가와의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는 실은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얕지 않고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이라는 일종의 보증 수표는 타인에게 그 사람을 소개할 때 뿐만 아니라 내가 내면에서 그 사람을 인지할 때 붙여놓는 해시태그 같은 거라 생각한다. 그 사람에 대한 기대와 막연한 두근거림을 만든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명명은 굉장히 쉽게 하는 반면 그 사람에게 붙이는 애정의 크기는 큰 사람. 잘 모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오인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좋아하고 쌓아올리려 노력해보았는지? 아 그게 부재했구나. 내가 나를 좋다고 안해주면 누가 나를 좋다고 말한들 그저 한순간 얼굴 붉히며 아니라고 손사래 치고 넘어갈 일일 뿐인 걸.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시간들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들을 망각하고 살 때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사실은 알고도 쉽게 고쳐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내 좋은 모습이 있는 반면 남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내 안 좋은 모습도 실재하니까.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니까 나는 나한테 제일 엄격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내가 아는 내 좋은 모습 마저 부정해오고 있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게 좋을 만큼 나에게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사람이고, 영상을 만들 줄 알고 내 영상의 색깔과 분위기를 사랑한다. 나는 여느 시간과 공간들을 언어로 조각해내는 걸 좋아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할 자신은 있다. 계획을 잘 짜지 못해도 지켰을 때 뿌듯함의 기억으로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 나 생각보다 좋아하는 내 모습이 많네.



난 아프려고 사랑을 한 게 아닌데


왜 내게 남은 건 깊게 패인 상처뿐야


널 그리워하려 맘에 담은 게 아닌데


왜 머저리처럼 미워하지 못하는데


넌 왜 거짓말을 하고 지켜내지 못할 말을


그리도 쉽게 뱉었나


내가 뭘 잘못했다면 사랑을 쉽게 믿었던


어렸던 나의 맘일 거야



우리 기억들이 내게는 너무 짙어서


망가진 사랑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너의 진심은 가벼워서 우리 몰래 날아갔나


아니면 그냥 이유도 없이


우린 영원의 사랑을 흉내 내던


이기적인 맘이었을 뿐이야


네가 떠나버린 축축한 모래성은


언제쯤이면 잠겨버릴까


맘이 닳아버려 부서져 버린다면


내 사랑을 돌려줄 수


[사랑은 내게 비극이어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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