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왔다. 우산을 써도 들이치는 비는 외출할 의욕을 꺾어버렸다. 나는 저녁을 먹으러 집을 나서자마자 바지 밑단이 젖는 걸 느끼고 나온 지 3분도 되지 않은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들어와 저녁을 어떻게 해결하지 생각하다 결국 배달 앱으로 귀결됐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가 쏟아지는 비를 피하고자 방에 들어왔음에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빗속을 뚫고 나에게 저녁을 가져다 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다른 사람의 고생을 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잔인하다.
코로나 시국 간에 배달앱 이용률이 늘자 배달원에게 돈을 주고 위험을 전가하는 게 아닌가, 위험을 돈으로 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의 목소리가 보도된 바 있었다. 악천후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쾌적한 환경에서 편리하게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불쾌함을 남에게 떠넘기곤 한다.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날의 습기와 온도를 피하기 위해, 비오는 날의 침윤을 피하기 위해 쾌적함을 돈을 주고 산다.
나는 올해로 만 24살이 되었다. 경제 활동 인구임에도, 노동 능력이 있음에도 내 손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직장인은 아직 되지 못했다. 아직 학업과 계발이 본분인 학생 신분으로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해 살아가는 데 이것이 상당히 죄스럽다. 주변에서 취업을 하는 연령대가 되다 보니 아직도 학생으로 생활비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조금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건 중산층의 자녀로서 내가 입고 있는 수혜이기도 하다.
내가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옷을 세탁하는 등 쾌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돈으로 계산이 된다. 의식주는 전부 돈이 든다. 땅에 발을 딛고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굉장히 소모적인 행위다. 살아 숨쉬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돈이 든다는 것을 자각할 때 인간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지만,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돈으로 환산될 때 자격 요건과 권리를 생각하게 된다. 위의 감정들을 관통하는 주된 원인은 내가 임금 노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것이 자격 요건이 되지는 않는다. 쾌적과 행복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아닌가. 임금 노동이 충분 조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적 가치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서는 안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