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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Oct 06. 2022

교양 없는 사람의 문학 읽기

문학은 그런 거니까요

시는  줄에  자나 들어가려나.   적지 않는 것에서 문학이 되려면 글자들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안고 있어야 할까. 작가는 글을   줄을 나눈다.  바꾸기는 책의 편집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되려나. 짧은 글이니 자그마한 요소에도 전달되는 의미가  없이 바뀔  있는데 작가는 책에 글을 실을  어떤 고민이 들까.

나는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무언가 관람하고 감상할  지극히 범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밖에 없다. 하루는 한국 국가대표 팀의 축구 경기를  적이 있었다. 어떤 규칙이나 전술에 대해 무지한  엄마와 나는 소파에 앉아 평화롭게 축구를 관람했다. 우리는 웃었다. 경기를 보며   있는 말이라곤 ‘저렇게 차려면 발목 힘이 얼마나 좋은거야‘, ‘태클 당하면 아프겠다’, ‘골키퍼는  쳐낼    아픈가정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지한 것에 대해 내가 한다면 어떨까의 이입적 관심을 갖고 바라봤다.

시를  때도 나는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그저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그러다 문득, 꽂히는 어휘나 꽂히는 문장,  크게는 문단을 두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때로는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 이입하기도 한다. 작가는 하루동안  많은 것에 시선을 두는  같다. 사물의 연결 방식을 보고 있자면 연결되지 않을 시상들이 이어지고 한데 있을  없는 것들이 모여있다. 그것이  신기하다. 그게 밝은 것이든, 한없이 짙게 어둔 것이든 작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은  같으니까.

시를 읽을 때도 여지 없이 적용되는 나의 이입적 관심은 시를 읽는 방식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심정으로  글을 썼는지,  낱말을 선별하고 담고자 했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  생각에 한참 머무른다. 그러다 보면  경험과  감정들을 넣어보기도 하고  사고체계 안에 글자들을 가져와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를 읽는데 재미를 느낀다. 내가 가진 어휘로는 조각할  없었던 섬세한 심정들을 풀어 써놓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문학 공부를  어려워하던 사람이었다. 문학을 읽으며 재미와 내밀한 즐거움을 얻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와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당시 시대적 상황과  문학이 갖는 사회적 의의를 찾아야하는 지적 노동에 종사했던  같다. 수업시간에 시를 읽을  있던 시간 속에서도 교탁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쏟아지는 정보들을 받아 적기 급급했다. , 한국의 입시 문제를 꼬집고자 하는  아니고 내가 문학을 어려워 했던 이유를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어렸을  일본에서 3년간 지내다 왔다.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으셨던 역사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전부 일본에 잠시 거주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에 국어 교육보다 다른 것들을 익히는 것만으로 버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학 공부를 가장 어려워 했고 지금까지도 남들에 비해 어휘력이 풍부하지 못하고 문장력이 좋지도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글을 쓰고 문학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학술 서적과 달리 문학이 좋은 점이 그런 점인 것 같다. 문학은 읽는 사람 만큼의 해석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읽고 해석한 그대로를 투영할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심연의 감정을 끄집어 느껴볼 수도 있다. 문학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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