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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27. 2022

그 땐 몰랐고 지금은 알아요

글을 조각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이 곳에는 결코 부정적이고 우울한 감정의 여향을 남기지 않고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그 어느 글감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일부를 부정하는 일이었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되려 내 우울과 불안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같다. 나는 21살부터 우울 장애와 불안 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4년이나 치료를 받아오며 내 우울에 대해 사념한 일이 많았다. 요근래 부쩍 우울이 와도 외면하고 회피하는 방법론적인 것들을 많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항상 느끼는 것은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어 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성향인 나는 그간 해온 그대로 우울할 때 역시 사람들을 만나 다른 이야깃 거리들을 꺼내고 때로는 우울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에 대해 성찰하고 객관화하여 부정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결로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건 그 사람의 주체성을 앗는 일이기도 하며 내게 필요한 영양소 같은 위로를 받는 것이란 절대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당초 우울이 시작된 것도 사람 때문인데 다시 사람으로 회귀하여 그를 치유 받고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깨닫지 못하고 또 다시 사람으로 회귀한 채 사람에 의해 생채기나고 붕괴되는 일상을 견디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는 지금 역시 유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매일 매일 주어진 과업들을 수행하고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만족스러운 모습에 가깝게 수렴시키는 일 밖에 하고 있지 못하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의 대사에는 그런 구절이 있다.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는 거. 자부심과 자긍심을 키우고 나의 긍지를 높이는 일, 현재로서는 신체적 개선과 지적 축적이라는 형태로 실행하고 있다. 그런 노력들이 아직까지도 사람에 의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사실은, 역시나 사람은 결단코 사람의 구원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구원을 원한다면 자구하도록 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최선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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