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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25. 2022

MBTI에 대한 고찰

혹시 IN…

어느샌가부터 MBTI가 유행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스브레이킹과 인사치레 수준으로 그 사람의 MBTI를 맞혀보곤 한다. 나도 그런 걸 상당히 즐겨하는 편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50대 중반이신 우리 부모님께서도 본인의 MBTI가 뭔지 알고 계실 정도.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모두가 걸어다니는 MBTI전문가다. 다른 사람의 것을 맞히다 보면 거의 무당이 따로 없다. 나는 INFJ였다가 ENFJ로 바뀌었다.


군인이었던 4개월 전까지만 해도 INFJ였다. 싫든 좋든 24시간을 함께해야하는 군대 선후임들은 내가 외향성을 발휘하고 가까워지고자 노력하는 대상들이 아니었다. 넉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확보돼야 할 시간들이었기에 혼자 있는 것에서 힘을 얻고 다소 내향적인 I가 내 첫글자였다.


이상한 사람인 거 같아

지금의 나는 ENFJ다. 그런데도 난 타고난 외향성 인간은 아니다. 나는 내향적인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다만 외향성을 지향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외향형 내향성 사람인 것이다. 말이 어렵지만 그만큼 적확한 말도 없다. 인싸이고 싶은 아싸가 정확히 나다. 말은 많지만 텐션이 높은 편은 아니고, 목소리가 작지만 조곤 조곤 시끄러운 편이다.


이건 확실하다. 난 타고난 헛소리꾼이다. 두번째 글자인 N은 바뀐 적이 없다. 공상가고 이상주의자이다. 걸어다니면서 말도 안되는 말들을 늘어놓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그에 웃음짓는 사람들이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특징이다.


일탈이 일상이 될 때

변하지 않는 글자는 더 있다. 나는 명백히 F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글자는 이성적이냐 감정적이냐를 논하는 자리인데 나는 감정 끝판왕이다. 다만, 표현하는 데 있어 적확한 것을 좋아해서 이성적인 언어들로 감정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를 표현하는 말로는 이성적으로 감정적인 사람 정도가 좋겠다.


또 나는 계획을 짜지 않고는 불안해하는 계획형 인간이다. 계획이 짜이지 않은 무질서의 시간들을 싫어한다. 블루홀이라고 아는지 모르겠다. 해빙기 때 생긴 싱크홀에 간빙기 때 물이 들어차서 생긴 바다 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다. 얼마나 깊은지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도 한 가운데 검은 구멍으로 존재한다. 블루홀 속에서 다이버는 우주 속에 혼자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블루홀 속에서 부유하는 다이버 같은 느낌을 나는 불안해하면서 공포스러워한다. 나는 통제된 수영장에 다이빙하는 다이버가 마음이 편하다. 내 시간이 통제돼있어야한다.


또 한편으로는 계획을 내가 짰음에도 일탈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크다. 이게 과해지면 일탈이 반복되고 일상이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괴로움과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내가 짠 계획인데 내가 지키지 않으려해서 오히려 그게 내 목을 옭아매는 매듭이 되는 것이다.


성찰은 참되게 하자구요

계획을 짜는 3단계는 수립-이행-모니터링이다. 나는 이게 부족했다. 모니터링. 계획을 짜고 이행하려고 하는 노력은 많았는데 잘 지켜지지 않을 때 계획을 조정하려 하지는 않고, 잘 지켜온 내 모습은 부정하고 못한 걸 크게 보는 걸 성찰이라고 생각해왔다.


지속 가능한 계획성이 필요할 때이다. 모니터링을 할 거면 잘한 건 잘했다고, 못한 건 이렇게 바꿔보자는 내면의 목소리를 낼 때이다. 그간 나한테는 성찰이라는 게 반성과 죄책으로 얼룩져있었는데 인정과 칭찬도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참되게 성찰할 때이다.


MBTI는 지표일 뿐 척도가 아니에요

간혹 보면 그 사람의 MBTI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MBTI는 척도가 아니다. 그걸 통해 사람을 판단하려고 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 사람을 알고 MBTI를 추측할 뿐, MBTI를 알고 사람을 추측하는 건 MBTI라는 네 글자로 사람을 환원하고 MBTI와 사람을 전도시키는 일일 뿐이다. MBTI는 MBTI일 뿐. 정리를 정의로 착각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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