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은 잃는 것이 아니므로
영화 <문경>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직장인 문경(류아벨)의 일상을 위주로 전개된다. 미디어 전시 기획팀에서 일하는 문경은 계약직 후배 초월(채서안)을 통해 회사 내의 불합리를 체감한다. 직장 생활에 환멸을 느낀 문경은 3일 동안 초월의 고향 ‘문경’으로 휴가를 떠난다. 문경은 그곳에서 만행 중인 비구니 스님 명지(조재경)를 만나 위험에 처한 떠돌이 개 길순(복순)을 구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순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문경> 속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의 결함과 내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문경과 명지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공유하고, 길순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그러나 이들은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를 찾는 것처럼 서로에게 의지하고, 치유를 향한 걸음을 나아간다. 영화는 그들의 성장과 치유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삶에 수반하는 고민과, 그에 대한 잔잔한 위로를 던진다. 그들의 일상이 우리와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고, 카메라가 인물들을 가까이에서 비추기 때문에 관객도 함께 일부가 되어 문경 곳곳을 유랑하게 되는 것이다. 스크린 너머로 문경의 여름 공기와 향기로운 풀내음이 물씬 맡아지지 않는가? 강물 흐르는 소리와 듬성듬성 이어지는 개 짖음은? 문경과 명지는 문경의 산길과 강가를 걷고,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내면을 돌아보도록 한다. 마치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 각자의 길 위에서 만행 중인 것처럼.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화면이 길순을 비롯한 개들의 시점을 반영하는 구간들이다. 카메라가 이동하고, 화면의 색이 전부 흑백으로 전환되면, 관객들은 개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흑백 화면이 푸른색과 노란색만 구분하는 것은 개가 지닌 색맹의 특징을 반영한 것인데, 이제 감독이 요구하는 바대로 관객은 ‘개’가 되어 우리(인간)를 응시한다. 전환된 화면은 개가 된 관객에게, 영화 속 개들이 특정 색의 옷을 입은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때 개들이 보는 푸른색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따뜻한 인물의 옷 색이 푸른색이었던 반면, 교통사고를 내고도 반성이 없던 인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개를 학대하는 인물이 등장할 때도 ‘개’는 ‘푸른색’을 본다. 짐작건대 이는 영화 <문경>이 개들을 연약한 피보호자의 역할로 배치하기보다는, 진리를 깨치고 각자의 방법으로 인간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쪽빛은 진리를 깨달은 자, “불교의 눈(佛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검푸른 머리카락 색에서 비롯된 이 상징적인 색깔은, 진리를 깨친 자와 동시에 신의 영역, 부처의 현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푸른색은 구분할 줄 아는(진리를 볼 줄 아는) 개의 영역과 푸른색을 두른 이들의 영역, 두 가지로, 비중을 둔 것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이 영화가 이미 만행 중인 명지 스님의 비중을 주인공 문경과 유사하게 다룰 때부터, 불교적인 색채는 예견되어 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떠난 길순과의 시간을 회상하는 문경에게 명지가 한 말은 이와 연결된다. “길순이가 우리를 데리고 다녔던 것 같은데요?” 명지의 말이 옳다.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문경과 막 세상으로 나온 서툰 비구니 명지가 길순을 통해 만났고, 길순의 집을 찾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길순은 또한 학교폭력의 상처로 방에 고립되어 있던 유랑(김주아)를 바깥으로 나오게 한 장본인이지 않은가?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속의 개들은 ‘담당 인간’이 깨달음을 얻거나, 번뇌에서 해방되는 순간 묵묵히 곁을 벗어난다. 마지막에 문경과 명지를 떠난 길순처럼, 유랑의 할머니를 떠난 해피도 할머니가 “비움”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떠났으리라. 그리고 길순은 자신이 필요한 또 다른 인간을 찾아간다. 우리가 상영시간 내내 놓치고 있던 인물 ‘초월’.
그러므로 <문경>은 누구나 겪을 법한,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있을 법한 사건들을 엮어서 현대인의 마음을 다정히 어루만지는 영화이다. 문경의 아름다운 강물처럼 관객은 인물들의 갈등과 해결을 따라가고, 마침내 자신의 상처에 닿는다. 영화는 상처의 ‘완전한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감독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과거를 인정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영관의 불이 켜질 때, 관객은 다시 힘차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즉, <문경> 자체가 관객의 ‘길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