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Apr 05. 2021

덫에 걸린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남편을 움직였다.

가족 산책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늘 캣맘이 사료를 놓아두는 자리에 덫이 놓여있고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냥이를 위한 작은 집인 줄 알았는데 덫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갇혀 있었다. 그 옆에 친구인지 가족인지 모를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안에 있는 고양이를 꺼내 주려고 하고 있었다. 덫에는 중성화 수술을 위해 포획한 것이니 풀어주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덫을 본 적도 없었고, 중성화 수술은 반려동물들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냥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지자체에서 시행한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안내문을 보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갇힌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려움과 슬픔이 묻어나는 작고 힘없는 소리였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덫을 들여다보자 고양이는 더 슬프게 울었다. 마치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덫을 열기 위해 애를 썼다. 우리가 도와주려고 하자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는 안심한 듯, 아니면 우리가 갇힌 고양이를 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옆에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덫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이 덫의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서둘러 열려고 하니까 더 안 열렸다. 안에 있던 고양이는 무서운지 으르렁 거리기도 하고, 나오려고 발버둥 치기도 했다. 한참을 애를 썼지만 결국 우리는 고양이를 구하지 못했다. 누가 볼까 봐 두렵기도 했다. 우리는 가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무겁게 발길을 돌렸다. 집에 와서도 남편은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유튜브로 덫을 여는 방법을 찾아보더니 다시 나갔다. 울음소리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구해주고 싶다고 했다.


잠시 후에 돌아온 남편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남편이 고양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평소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던 캣맘이 덫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 멈췄다고 한다. 캣맘이 구해주려나 보다 하고 보고 있었는데 캣맘은 덫에 쓰여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중성화 수술을 안 한 고양이가 잡혔으니까 빨리 데려가라고 했다고. 남편은 캣맘이 당연히 고양이를 구해줄지 알았는데 전화를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캣맘에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슬퍼서 구해주고 싶다고 했단다. 캣맘이 중성화 수술하고 다시 여기 보내주니까 괜찮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사실 우리 가족은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반려동물을 키운 적도 없고 키울 수도 없어서 알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나, 지자체에서 필요해서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계기로  알아보게 되었다. 중성화 수술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덫에 갇혀서 울고 있는 고양이와 그 옆을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의 모습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마음이 아팠다. 아들은 울기까지 했다.


길냥이들을 보면서 예뻐서 가까이 가고 싶고, 사료를 사서 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을 믿고 사람이 놔둔 사료를 먹다가 덫에 걸린 고양이가 느낄 배신감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된다. 사람 입장에서는 중성화 수술하고 다시 돌려보낼 거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겁에 질려 있을 것이다. 아마 한동안 사람을 믿은 자신을 자책할지도 모른다.   


남편은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지 않던 사람이다. 워낙 동네에 길냥이가 많아서 지나가다 마주치면 기싸움하듯 잠시 마주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정도다. 그런 남편이 길냥이를 구하겠다고 장갑을 챙겨서 나갔다가 캣맘에게 저지당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고양이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덫을 여는 방법을 검색해서 구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사료도 주고 중성화 수술을 위해 기꺼이 고양이를 내어주기도 했던 캣맘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오래 그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했다. 간밤에 고양이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나는 그 고양이를 구하지 못했다. 고양이의 슬픈 울음이 잠이 깰 때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멍했다. 잠에서 깬 아들이 멍한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엄마 고양이 생각하세요?"

아마 아들도 그 고양이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고양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어차피 그렇게 된 거 얼른 수술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고양이 옆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얼른 만났으면 좋겠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나에게 질병 통역사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