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나는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근처에서 꽤 괜찮다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아픔이 내 마음에는 호수 밑바닥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잘 있다가도 갑자기 화가 치밀면 나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아파서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좋아지지 않았다. 소리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슬프지 않은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울기도 했다.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년의 의사는 포근한 이미지의 언니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위로할 마음이 없었다. 상담시간은 5분 남짓, 의사가 한 말은 그렇군요. 힘들었겠어요. 환자분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네요. 일단 검사를 해 봅시다.
100개나 될 것 같은 질문에 답을 하고 머리에 전선이 달린 스티커를 붙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말했다.
"우울증이네요. 약을 처방해 줄 테니 한 달 후에 다시 오세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검사를 해봐야 아나? 나도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한알도 먹지 않았다. 나에게는 약으로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괜찮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차라리 검사를 받지 않고 십만 원어치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냥 독서회를 하면서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나를 달래고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소설이나 동화를 쓰곤 했지만 이렇게 나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두 달 동안 일상과 풍경, 육아와 책에 대해 쓰면서 오래 묵었던 기억들이 나를 울렸다. 글로 쓰지 않았는데도 아련하고 쓰린 기억이 나를 아프게 했다.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면서 즐겁고 아팠으며, 때때로 행복했다. 브런치는 나에게 질병 통역사가 되어 있었다.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여행 가이드이지 질병 통역사 카파시는 다스 가족을 가이드하게 된다. 다스 부인은 처음부터 여행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무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카파시가 질병 통역사(병원을 찾은 환자의 상태와 질병을 의사에게 통역해 주는 직업)라는 말을 듣고 카파시에게 훌륭한 일을 한다며 관심을 보인다. 평소 아내에게 냉대받던 직업을 칭찬하는 다스 부인에게 카파시 역시 관심이 생기고 둘만의 대화를 상상하며 행복해한다. 다스 부인은 카파시에게 막내아들이 남편의 아들이 아니라는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진단하고 처방해주기를 바란다. 카파시는 불륜의 비밀을 안고 사는 고통을 진단해 달라며 털어놓는 다스 부인에게 모욕감을 느낀다.
“잠깐만요, 다스 부인, 왜 당신은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제발 나를 다스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는 스물여덟 밖에 안 되었어요. 당신의 재능 때문에 말씀드리게 된 거예요.”
“무슨 말인지요?”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나는 8년 동안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친구에게도, 더욱이 라즈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아직도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신은 내게 할 말이 없으세요?”
“무엇에 대해서 말입니까?”
“내가 방금 말한 것에 대해서요. 내 비밀, 나의 이 끔찍스러운 느낌에 대해서 말이에요. 아이들을 쳐다보면 끔찍스러워요. 라즈는 더 끔찍스럽고요. 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어떤 날은 창문을 열고 아이들을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카파시 씨, 뭔가 할 말이 없으세요? 난 그게 당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직업은 관광 안내를 하는 겁니다, 다스 부인.”
“그거 말고요. 당신의 다른 직업, 통역사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통역이 필요합니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세요?”
“무슨 뜻입니까?”
“난 그동안 그런 끔찍한 느낌을 갖고 살아온 생활이 피곤해졌어요. 카파시 씨, 무려 8년 동안 고통을 느끼며 살아온 거란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내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뭔가 치료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것이 정말로 아픔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입니까?”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질병 통역사) 중 일부
브런치에 나 같은 사람도 글을 발행해도 되는지 생각했다. 훌륭한 작가분들이 많아서 글을 발행할 때는 손이 떨렸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옷을 벗고 길을 걷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었다. 동화나 소설을 쓸 때와는 다른 부끄러움이었다. 두 달 동안 브런치에 한 말이 내가 어른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내 얘기보다 더 많고 진했다. 브런치(?)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었다. 마치 다스 부인이 카파시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고통을 덜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스 부인은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 질병 통역사인 카파시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택시기사님에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만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 속마음을 말할 수 있고, 혼자 감당했던 비밀의 무게를 덜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브런치가 나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거죠?"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매일 아침 주저리주저리 마음의 껍질을 벗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브런치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마도 나는 꽤 외로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무게로 힘들고 외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두 잘 이겨내고 있었구나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내 마음의 아픔도, 상처도 못 본척했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생존기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브런치가 나에게 질병 통역사가 된 것처럼 나도 브런치의 질병 통역사가 되어 읽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