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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12. 2021

목련 좀 구워봤어요.

우리 동 화단에 핀 목련도 어느새 지고 있다. 그늘진 위치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 늦게 꽃이 피고 늦게 진다. 그늘에 핀 꽃이라 유독 더 청초하고 우아했다. 오며 가며 볼 때마다 목련 자태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지려고 한다.


지는 모습에서 빵 냄새가 날 것 같다. 나무에 그대로 달린 꽃잎이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졌다. 목련이 지는 모습을 정갈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목련꽃이 순백으로 피어있는 것을 보면 고결한 자태에 넋을 잃지만 지는 모습은 갈색으로 볼품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목련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 자태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지는 모습조차 남의 구설에 오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절대 목련 지는 모습을 지저분하다고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목련꽃을 피우려고 이른 봄, 아직 찬 바람이 불 때부터 솜으로 꽃잎을 애지중지하면서 피워낸 정성을 알기에 그렇다. 갓 봉오리가 피어나는 목련의 부끄러운 마음을 알기에 그렇다. 꽃이 만개하고도 요란하지 않게 나무 위에서 지켜내는 그 고요함 때문이다. 그런 목련은 질 때조차 요란하게 흩날리지 못하고 살포시 그 나무 아래 내려앉는다. 조심스럽게 핀 만큼 지쳐서 멀리 날리지도 못한 듯 한 그 피로가 지는 목련꽃에서 느껴진다.


그랬던 목련이 정갈하지 못하게 진다는 오명을 벗기로 한 것처럼 땅에 떨구지 않고 그 잎을 정성스럽게 구워내고 있었다. 빵 냄새가 날 것 같은 목련꽃잎을 한참 바라본다. 수고했어. 목련아. 맛나게 먹고 간다.


사람의  관계에서 나는 가끔 완벽한 것만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만나서 밥 먹고 차마시던 지인이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한참을 수다를 떨던 사람이었다. 아이가 7개월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 빨리 친해졌다. 이유식 만들어 놓은 것이 없으면 자주 나한테 부탁해서 먹이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지인은 남편과 시어머니한테 쌓인 것이 많아서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했다. 하소연은 들어줄 수 있었다. 나도 남편 때문에 힘든 얘기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매번 이렇게 하소연을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항상 나는 그런 고민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사니 좋겠다로 끝내니 피로가 더했다. 나와 정말 다른 사람과 한 집에 사는데 어떻게 모든 것이 마음에 맞을까? 그래서 우리 부부도 다 맞지 않다고 말해도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그만 큰소리로 짜증을 냈다. 나도 힘들어요. 다 힘들지 안 힘든 사람 어디 있어요? 음식을 시켜놓고 있었는데 그 후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색하고 불편하게 식사가 끝났다. 그 후로 그녀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내 잘못이었지만 서운했다. 그녀의 하소연, 부탁 다 들어줬는데 한번 언성 높인 것으로 그녀는 나와 보낸 다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변했다. 차라리 뭘 그렇게 짜증을 내냐고 말했으면 무안하지만 사과했을 텐데 그녀는 내 한 번의 실수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목련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그런 것 같다. 누구보다 빨리 꽃눈을 만들고 조심스럽고 귀하게 꽃잎을 피웠는데 마지막까지 너는 최선을 다해서 깨끗하게 마무리하라고 하는 것 같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진 모습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같다. 목련의 우아함을 지켜야 하는 부담에 구워낸 목련 한 조각에 목련의 피로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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