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시골의 작은 분교였다. 전교생이 100명 정도였고, 각 학년에 한 반만 있었다. 입학을 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 조회가 있어서 전교생이 운동장에 학년별로 줄 서 있었다. 1학년인 우리 반은 교단이 있는 방향의 가장 왼쪽에 서 있었다. 국가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이 끝나고 교장선생님이 교단에 올라갔다. 교장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한참이 지났다. 나는 조금 지루했는지 오른쪽 발로 운동장 바닥을 발로 툭툭 쳤다. 내가 세 번째로 흙을 쳤을 때였다. 순식간에 내 눈앞에 나타난 담임선생님이 무서운 얼굴로 나에게 싸대기를 날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놀라서 얼어있었다.
조회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어떻게 교실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교실에 돌아온 내가 울고 있었다.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다가도 나에게 다가와서 달랬지만 나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가끔 흘낏 나를 돌아봤다. 초등학교 때는 키가 컸던 나는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내렸다. 너무 울어서 기운이 없었고, 가슴께가 썩썩하게 쓰렸다.
종례를 하고 내가 울면서 집에 가는 것이 불안했는지 선생님이 울면서 가방을 싸는 나에게 남으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울면서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담임선생님이 다른 반 여자 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그 선생님의 힘을 빌려 나를 달래 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멈출 수 있는 울음이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않는 아픔이었다.
그 일이 내가 그 선생님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다. 그 이후에도 그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뛰놀기도 했겠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 하나의 기억이 싸대기였다. 그날의 일이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두 개의 물음을 주었다.
하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했는가이다. 조회시간에 발장난을 한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세 번 발로 바닥에 작은 홈을 만든 일이 전교생과 모든 선생님이 보는 상황에서 싸대기를 맞을 정도의 잘못이었는가 그 선생님에게 묻고 싶다. 싸대기를 맞을 때 너무 놀라서 별이 보일 정도로 아팠다든가 볼이 얼얼했다든가 하는 기억은 없다. 하지만 잡아먹을 듯이 나를 보던 선생님의 얼굴과 귓가에 울리던 쫙 소리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울었나 하는 것이다. 집에서도 나는 자주 맞았다. 아빠가 며칠에 한 번은 때렸고, 친오빠도 자주 내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맞은 것처럼 울었다. 귀하게 자란 외동딸처럼 울었다. 내가 왜 그렇게 울었을까. 도저히 맞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때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때려서 그랬을까?
지금은 학교체벌이 금지되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나는 자주 선생님들의 체벌을 체험했다. 책상에 올라가서 손들고 한 시간 벌서기나 엎드려뻗쳐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시험을 못 봐서 손바닥을 25대까지 맞은 적도 있었다. 대나무 뿌리로 만든 회초리를 좋아했던 수학선생님은 아마 때리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우리의 수학 성적을 걱정한다기에는 너무 웃고 있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맞은 체벌들은 나에게 별다른 아픔이나 고통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8살에 내가 맞은 싸대기는 사회생활에서 겪은 내 첫 싸대기였고, 마지막 싸대기였다. 텅 빈 교실에서 딸꾹질 같은 울음을 꺽꺽 삼키던 고통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선생님이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할 문제인지도 이제 확신이 없다. 그러게 왜 조회시간에 발장난질이야 하고 말한다면 내가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내가 받은 상처가 깊고 아파서 나는 무조건 그 선생님을 욕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고작 8살이었다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 것 같다. 아무리 얌전한 아이도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었다. 손가락 장난이든 발장난이든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 접시에 반찬으로 사람 얼굴을 만들거나 쌈채소를 찢어서 가면을 만들어 얼굴에 쓰기도 한다. 아이들은 참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구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지루한 것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가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과하지 않은 아이의 장난을 꾸중하지 않는다. 대신 창의적인 작품이라고 칭찬해준다. 지루한 시간이 주는 고통이 아이들에게 아주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