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우리 가족은 높이뛰기를 보면서 여름 더위를 잊었다. 우상혁 선수가 결승에 오른 것도 대단했지만 정말 잘 뛰어 주었다. 나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우상혁 선수를 응원했다. 우상혁 선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침착하게 잘 뛰어주었다. 2m 33까지 실패 한번 없이 해냈다. 나는 우상혁 선수를 응원하듯 우상혁 선수 외에 모든 선수가 실패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실패해라 실패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말했다.
"엄마 아무리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지만 실패하라고 기도까지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잉?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려면 다른 선수가 실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기를 바라면서 상대의 실패 역시 바라지 말라는 뜻일까? 그게 올림픽 정신이라는 말일까? 아들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나라 선수든 외국선수든 올림픽을 위해 힘든 훈련을 하고 출전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이기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그래서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성공하면 더 기뻐해주라고 했다. 그건 아니지 너도 축구 볼 때 우리나라 이기라고 응원하잖아 라고 한마디 해주려다 참았다. 아들이 한 말에 비해 내 말이 뭔가 모양 빠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수든 외국 선수든 모두 모두 잘하라고 응원하는 일이 나에게는 사실 어려웠다. 나는 올림픽 정신이 부족한 것 같았다. 우상혁 선수가 뛸 때는 성공을 큰소리로 빌고, 다른 선수가 뛸 때는 실패를 속으로 빌었다.
우상혁 선수는 4위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웃으면서 경례를 해 주던 우상혁 선수를 보면서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공동 1위로 두 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2위는 없이 바로 3위 동메달이었다. 결과적으로 4위를 한 우상혁 선수는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이게 뭐지? 싶었다. 왜 공동 1위 다음이 2위가 아니라 3위가 되는 것인지 올림픽 정신이 아직도 한참 모자란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은메달을 인정했다면 우상혁 선수가 동메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상혁 선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경기를 즐겼다. 2m 39미터를 넘지 못하고도 웃으면서 경례를 하고 내려오는 모습에서 나 같은 사람은 범접하기도 힘든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런 아우라 오랜만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젠가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오심을 한 일이 있었고 그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패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정말 잘해서 오심까지 극복하고 이기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박지성 선수에게서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스포츠맨의 아우라를 보았다. 우상혁 선수에게서 다시 스포츠가 무엇일까? 스포츠 정신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아마 우리가 사는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실패하고 그 실패를 수없이 딛고 일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항상 탓을 하면서 달린 것 같았다. 결과만 보고 달렸다. 그래서 자꾸 넘어지면 일어서기 싫었고, 작은 실패에도 좌절했다. 모든 경기를 웃으면서 자신을 믿고 뛰었던 우상혁 선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선수였다. 올림픽 전까지 누군지도 몰랐던 우상혁이란 선수, 그 선수의 어제가 안타깝고 멋있고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다.
아들은 얼마 전에 읽은 책 <5번 레인>의 예를 들면서 4위를 하건 8위를 하건 진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를 즐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우상혁 선수는 결코 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들의 말이 또 멋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보다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번이나 왜 동메달 안 주는 거야. 2위 하고도 동메달 받은 선수도 우상혁 선수도 속상하게 왜? 그냥 동메달 주라 그냥 주면 안 되겠니? 하면서 듣지도 않는 올림픽위원회를 향해 소리소리 질러댔다.
코로나 시국에 올림픽을 무리하게 개최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울고 웃는 선수들을 보면서 올림픽의 의미를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본 올림픽에 경제적인 이유나 정치적인 이유는 없었다. 오직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땀과 노력의 가치만이 메달만큼 빛나고 있었다. 아직 남은 기간 코로나도 더위도 이겨내고 모든 선수가 올림픽 자체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표지 사진 출처 <연합뉴스 스포츠 한국 이재호 기자 8월 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