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이상하게 심장이 쿵하고 놀라는 소리가 난다. 아이는 내 옆에 있는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퇴근할 시간이 지난 5시에 걸려온 전화라 더 놀랐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아들이 어린이 과학상을 수상하게 되어서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안내였다. 나는 다소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왜요? 그게 무슨 상인가요?
학교에서 5학년 선생님들과 과학선생님,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회의를 통해 추천한 학생에게 주는 과학기술부 장관상이라고 했다. 영재학급 담당 과학선생님이 특별히 아들을 추천해서 결정된 일이라고 했다. 통화를 하는 동안에는 정신없어서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장관이 왜 우리 아들에게 상을 준다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 과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특별히 과학을 잘한다거나 어떤 과학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들이 어린이 과학상이라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상을, 그것도 장관상을 받게 되었는지 사실 지금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상장 수여는 내년 4월 과학의 날에 한다고 하니 더 실감이 안 나고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그나마 설명이 되는 것은 올해 아들이 영재학급 수업을 들은 것이다. 우리는 아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있다. 사교육뿐만 아니라 아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볼 때까지 공부를 하라는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들은 한글도 혼자서 터득하다시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문제를 풀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1학년 받아쓰기는 일 년 내내 백점이었다. 2학년 때는 마침표나 띄어쓰기 때문에 몇 개 틀리긴 했지만 받아쓰기는 항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는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은 단원평가였다. 시험에 나온 문제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어떤 답을 골라야 하는지 몰라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그것도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저절로 잘해나갔다. 물론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보면 틀리기도 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질문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들은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냉가슴을 앓았다. 2학년 때 아들은 선생님께 수학을 물어봤는데 잘 가르쳐주셨다고 좋아했다. 지금까지도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할 정도로 고마워했다. 3학년 가을 상담을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들의 수학 성적이 너무 안 좋다고 집에서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걱정했다. 아들의 점수는 70점, 6개를 틀렸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선생님의 걱정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70이 낮은 점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아들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학습에 대해 가장 힘들어한 것은 4학년 때였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어려워서 자주 나한테 도움을 청했다. 사실 수포자인 나는 아들이 질문을 할 때마다 긴장했다.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문제도 있었지만 나도 모르는 문제가 많았다. 정말 초등학생 문제가 맞나 싶었다. 그럴 때 나는 아들에게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참 고민을 해도 모르겠을 때는 다음날 다시 풀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음날 풀기로 했다. 지금 당장 모르겠는 문제도 다른 날 보면 알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일주일 만에 마치 섬광처럼 문제가 풀리기도 했다. 어떤 문제는 일주일을 고민해도 모르겠어서 유튜브나 ebs에서 풀이과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느리지만 천천히 4학년 수학을 아들과 나는 함께 공부했다. 특이한 점은 5학년이 된 아들이 한 번도 나한테 수학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어려운 것이 없냐고 물으면 5학년 수학은 쉽다고 했다.
아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무서운 말을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교과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때 아이들은 미리 가르치지 않은 부모를 원망한다고 했다. 그때는 아무리 따라가려고 해도 힘들다고 했다. 내가 아들을 망치고 있다고 그렇게 키우면 큰일 난다고 했다. 아들이 두 돌이 지나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것을 선택했다.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정말 내가 아들을 망친 것은 아닐까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집에서 내가 시간 맞춰서 공부를 시키지도 않고 있다. 정말 5학년이 맞나 싶게 대책 없이 놀고 있다. 그런 아들이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장관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들에게 꼭 시키고 싶었던 것이 영재학급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아가고 토론하는 수업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업이 하필이면 토요일 오전에 있었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이 번갈아 있었다. 비대면일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대면일 때가 문제였다. 당연히 쉬어야 하는 토요일에 학교에 가야 하니 아들은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수업을 듣고 오면 아들은 재미있었다고 좋아했다. 아이가 받아온 학습지나 수업 재료를 보면서 영재학급 수업 듣기 잘했다고 생각하다가도 엄마 아빠는 집에서 쉬는데 혼자 학교에 가는 아들을 보면 미안했다. 그래도 이 수업 덕분에 아들이 어린이 과학상을 받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힘든 일 년이지만 보람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만큼 아들이 상을 받아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아들은 상 받을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공부를 안 하니까 아들은 학교에서 더 집중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뜻하지 않게 상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아들에게 얼마나 뜻깊은 큰 상을 받게 되었는지 말했더니 무심하게 '뭐 그런 상을 왜 갑자기 주냐.'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아들의 얼굴에 쑥스럽지만 뿌듯한 미소가 퍼뜩 지나갔다. 아들에게 이럴 때는 크게 자랑하는 거라고 크게 뿌듯해하는 거라고 말했다. 아들은 이번에도 친구들에게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로 자랑하면 친구들이 잘난 척한다고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도 아들의 마음속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가득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가족 독서 밴드에 아들의 닉네임이 '나는 내가 정말 좋아' 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아들이 원하지 않으면 사교육을 시킬 생각이 없다. 대신 아들에게 나는 나의 시간을 준다. 아들이 말을 걸어오면 바쁠때도 최대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들이 놀자고 하면 귀찮아도 최대한 놀아주려고 한다. 나도 사람이라 어쩔수 없이 정말 바쁘거나 힘들때는 아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아들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들이 감히 의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아들을 누구보다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아들이 알게 하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아들에게 나의 시간을 주는 것이 어떤 사교육보다 지금은 아들에게 필요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