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가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통장 거래내역을 확인했다. 12년 만에 받는 한 달 급여라고 하니 이제는 설렘이나 긴장 따위는 거의 느끼지 못하는 마흔여섯의 나이지만 심장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리고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하고 아무 생각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조금 슬펐다. 12년 만에 일을 구한 경단녀 아줌마가 한 달 동안 일한 대가가 나에게 준 것은 배신감이었다. 629,920원. 설 연휴 쉬는 날을 고맙게 챙겨준 금액이었다. 스무 살 시절에 카페 주말 아르바이트할 때 받은 금액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임신하기 전까지 내가 받은 화려한 월급들이 휙휙 머릿속으로 바람처럼 지나갔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이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아니 나는 어느 경우에도 경단녀 아줌마에게 일을 준 시청에 언제든지 90도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공고문을 보고 이력서를 내고, 처음 일을 하러 가는 날의 내 마음은 그랬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공식적으로 계산되는 주 3일 하루 4시간이란 참으로 일방적인 계산 방법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아동복지센터 아동들에게 독서지도를 해주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서 비대면 시대에 대면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대면으로 면접을 봤다. 그리고 다시 대면으로 추가 서류를 접수하고 대면으로 계약서를 쓰러 갔다. 그러면서도 그저 일을 시켜준다면 나는 조금도 당신들을 원망할 마음이 없어요라고 마음으로 외쳤댔더랬다. 최종 합격했을 때도 나는 일 년 계약기간 동안 뼈를 갈아 일하겠다고 마음으로 맹세도 했더랬다. 언제나 웃으면서 허드렛일 따위 불평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줌마니까 아줌마의 경력 12년이면 못할 일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일한 수당이 찍힌 통장 앞에서 나는 초심 따위 잊어버렸다. 그제야 '수당이 너무 적죠? 선생님들 어차피 복지센터에 아이들을 위해 가시는 거니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해주세요.'라고 했던 시청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에 봉사라면 잘할 수 있지라고 자신했던 나도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평소에도 아름다운 가게나 다른 복지단체를 통한 봉사를 찾아 하곤 했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순간부터 온갖 허드렛일 봉사를 자청하며 다녔다. 어린이집 안전봉사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도서관 봉사와 마미캅 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매주 학교에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봉사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은 달랐다. 차라리 무료봉사라면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센터에 일주일에 3일을 가야 하기 때문에 3일 동안 다른 책을 읽어주기 위해 나는 매주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선정해서 빌려온다. 일주일에 3개의 독서 활동지를 만들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추가분의 책도 준비한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을까 다양한 독후활동도 준비한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는 하루 수업에 대해 일지를 써서 센터에 제출하는데 학생들의 분위기나 태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다. 그리고 나서 시청에 제출할 일지와 근무상황을 기록한다. 내가 센터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집에서 하는 시간이 더 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이런 일들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알고 한 일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놓인 현실이 쓸쓸했다.
나를 더 기운 빠지게 하는 것은 책 읽기를 수학 공부보다 싫어하는 아이들이다. 독서수업 첫 시간부터 아이들은 책 싫어요 를 외치면서 억지로 끌려왔다.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문을 잡고 버티는 아이들을 억지로 들여보내는 복지사 선생님들께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억지로 읽는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사실 몰랐다. 나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내가 정말 야심 차게 준비한 역대급 재미있고 좋은 그림책이니까 금방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책 읽기 싫다고 교실문을 붙잡고 저항한다. 내가 책을 읽어주면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도 생겼지만 그랬다가도 다음 수업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겠다고 아들을 혼자 두는 것일까? 나는 다시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들과 책 이야기나 실컷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센터에 있으면 혼자 집에 있는 아들이 자꾸 보고 싶어 진다.
한 달을 이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위축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겠다던 마음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아니 나는 이제야 밝히지만 봉사정신 같은 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잘 돌봐주세요라고 했던 시청 직원을 생각하면 자꾸 눈꼬리가 올라간다. 내가 받은 60여만 원의 수당은 쓰기도 아까워서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남편이 목돈으로 벌어오던 월급 쓸 때는 몰랐는데 시간으로 계산해서 받으니까 어찌나 아까운지 차마 쓸 수가 없다.
내가 임신을 하면서 외벌이로 혼자 우리 가정을 지켜온 남편이 매달 이런 마음이었을까? 고객들의 모진 불평과 욕설을 고개 숙이면서 벌어온 남편의 돈도 잘만 쓰면서 아이들 투정 어린 돈은 아까워서 못 쓰고 있는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코로나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게일로 한숨 쉬는 남편에게 나도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야심 차게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남편의 12년 시간의 그 쓰라림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한 달 한 달 버티면서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남편에게 적은 돈이지만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되고 싶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희망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르는 철없는 아줌마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