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졸업식에 없는 것

by 써니

어제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다.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며칠 전부터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들이 6년 동안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뭔가 꼭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다. 그래서 먼저 초등학교 졸업생을 둔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원래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새 옷을 사야 하지 않을까? 혹은 새 운동화나 기념할만한 것들이라도 사야 할까 물어봤다. 지인들은 나를 말렸다. 내가 열정적으로 졸업식을 준비하는 것을 아들이 원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특별히 옷을 사주면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가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뭔가 불안하고 허전했지만 지인의 말대로 아들은 평소 편하게 입는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지인의 말은 옳았다. 졸업식에 모인 학생들은 패딩점퍼에 편한 복장이었다. 졸업생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학부모는 한 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에 서 있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의 졸업식 영상을 화면으로 보여줬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졸업을 하는 소감을 말하는 아이들, 졸업이 무슨 큰 일이라고 유난 떠냐는 듯 무심하게 할 말 없다고 하는 아이들까지 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그대로 담긴 영상이었다. 그래도 내 아이가 화면에 나타나면 감격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졸업할 때는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는데 아들의 졸업식에서는 한 명씩 나가서 자신의 졸업장을 직접 교장선생님께 받았다. 그리고 졸업장을 받는 동안 학생의 사진과 장래희망, 친구들에게 남기는 말을 쓴 사진이 큰 화면에 배경처럼 나타났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교사나 경찰관, 과학자로 다양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때 공개수업 시간에 한 아이가 장래희망이 건물주라고 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졸업식에서 본 학생들의 장래희망에는 돈 많은 백수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을 보고 웃는 목소리가 없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건물주나 돈 많은 백수를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보다가 아직 꿈을 찾고 있다는 세명의 답을 보았다. 그리고 학생 두 명은 행복한 사람이 꿈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모호한 답을 한 학생들도 좋았고, 그 모호한 답을 그대로 써주는 분위기도 좋았다. 그 글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이런 답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분명 아무 꿈이라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장래희망을 아직 찾지 못한 학생들은 무난한 답을 했다. 교사나 과학자 같은 답이 가장 많았다. 행복한 사람이 장래희망이라는 말에 그때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 그건 장래희망이 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학생들이 졸업식에서 말한 장래희망은 그 아이가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일까? 우리 아들은 꿈이 정말 자주 바뀐다. 유치원 때는 과학자, 1학년때는 의사였다. 2학년에는 반찬가게 주인이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 아들의 꿈은 작가였는데 졸업식장에서는 교사였다. 정말 꿈이 실시간으로 바뀐다. 그래서 장래희망에 어떤 특정 직업을 말한 아이들 역시 꿈을 찾아가는 중이다. 심지어 마흔이 훌쩍 넘은 나도 지금 꿈을 찾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의 꿈은 내 안의 틀을 깨는 사람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모호하고 애매한 답을 모두 장래희망으로 써준 사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졸업식 막바지에 5학년 후배들의 축하영상이 있었다. 축하영상은 진지하지 않았다. 깔깔 웃으면서 6학년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짠 듯 실수 없는 축하인사가 아니었다. 실수를 해도 웃으면서 찍은 영상을, 실수한 영상이나 연습장면까지 보여주었다. 그래서 졸업식은 웃으면서 끝이 났다. 아들의 졸업식에는 엄숙함이 없었다. 정든 학교와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울먹임도 없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담긴 영상과 그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학교가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많은 교칙이 있었고, 그래서 학생들이 불편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딱딱한 엄숙함이 없는 졸업식이 낯설고 좋았다.


시간이 지나도 졸업식에는 꽃다발이 있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여전했다. 아들과 눈이 녹지 않은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졸업식보다 사진을 찍을 때 더 졸업식 같았다. 이 사진이 내가 졸업생의 학부모라는 인증 같았다. 이제야 아들을 낳아 기르는 모든 시간이 실감 나는 기분이었다. 사진 찍기가 어색한 아들의 불편한 모습까지 그대로 졸업식에서 볼 수 있는 공식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요즘 졸업식에도 여전히 짜장면이었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하루 중 아들은 가장 즐거워했다. 역시 졸업식은 짜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