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오늘도 5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그래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뒹굴거리는고 있는데 아들이 일어났다. 나는 이 시간에 일어나도 보통 다시 잠을 잔다. 아침에 자는 자투리 잠이 더 달콤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에 30분만 더 자려다가 오히려 늦잠을 자게 되고, 그러면 하루가 더 피곤해진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바로 일어나지 않고 뒹굴뒹굴하다가 늦잠을 잘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거실로 나와서 책을 펼쳐 들었다. 황 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는다. 읽으면서 이런 서점이 정말 있다면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던 작품이다. 서점 주인 영주가 신중하게 고른 책들로 채워진 서점에 들어가서 민준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다가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본문 중
이 구절이 좋아서 아들에게 읽어줬다. 아들은 조용히 내가 읽어주는 구절을 들었다.
"아 알 것 같애요. 사람이 살 때는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다는 말 같은데요."
아들이 말했다.
"그래. 그런 말이야. 이 구절 좋지?"
"네. 엄마 나는 요즘 불협화음인 것 같애요."
아들이 말했다. 항상 밝은 아들이 인생이 불협화음이라니 나는 놀랐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냥 요즘 하는 일마다 안 되거든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13살 아들이 인생에서 지금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시기를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아들의 말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지 않고 진지하게 아들에게 물었다.
"어떤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은데?"
"그냥 하는 일마다 다 안 풀리고 있어요. 제가 뭔가 시도하는 일마다 꼬이는 기분이에요."
나는 속으로 놀랐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아들의 꼬이고 있다는 인생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예들 들어서 어떤 일이 그래?"
"요즘 학교 모둠활동 과제를 해야 하는데 제가 걸리지 말라고 했던 애들만 우리 모둠이 된 거예요. 모둠 활동할 때 장난만 치고, 그러면서 과제하자고 하면 안 한다고 하고 다른 애들이랑 놀기만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요. 게다가 지난 주말에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아무튼 요즘 내가 하는 일마다 운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은 내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진지하게 대하기로 했다.
"그래 살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리는 시기가 있지. 그럼 이제 아들에게 화음이 올 차례가 아닐까?"
"그런데 엄마 화음이 안 올 것 같애요. 요즘 문제 풀 때 아는 문제도 틀리고 왜 자꾸 내 뜻대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아들은 정말 심각했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별일 없이 좋았다고만 했던 아들이었는데 아들에게 이런 고민이 있었다니 놀랐다. 한편으로 이런 고민으로 성장하게 되고, 자극이 될 것이니까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아들의 고민이 별것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13살에게 이 이상 더 큰 문제가 뭐가 있겠는가? 아들은 아마 모둠활동이 끝나는 다음 주 수요일이 될 때까지 머리가 아플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숙제를 빨리 해내지 않으면 불안한 아들에게 천하태평인 모둠원들은 풀리지 않는 숙제일 것이다.
"......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이 화음인지 불협화음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내가 화음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불협화음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
"음...... 정말 그러네요. 지나가고 있을 땐 잘 모르기도 하니까 뒤돌아봐야 알게 되기도 하죠."
"그러니까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렇다면 궁금하더라고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어떤 상태 같아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민준이 조금 착잡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 화음 같은데, 사람들은 불협화음으로 볼 것 같아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본문 중
아들에게 이 구절도 읽어주었다. 말없이 아들은 듣고 있었다. 아들은 책 내용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눈에는 걱정 없어 보이는 아들, 인생의 화음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아들은 불협화음을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화음일까 불협화음일까? 나의 가족, 남편도 혹시 불협화음일까? 내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가족들의 진짜 마음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미안하다. 아들에게 곧 화음의 시기가 올 거라고 말했지만 내 말이 아들에게 닿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들 오늘 아침에는 요가 쉴까?"
아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내가 말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들과 아침에 간단한 요가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쉬게 해 주고 싶어서 내가 말했다.
"에이 그건 좀. 짧게라도 하죠."
아들이 말했다. 의외였다. 아들이 나 때문에 억지로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들은 짧게라도 요가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정말 아들의 마음을 정 반대로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살고 있다고 서로에 대해, 심지어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은 아들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아침이다.
아들의 마음, 그 깊은 고민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들이 인생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항상 함께 온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아들이 화음이 아니라 불협화음일 때 엄마가, 아빠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