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하고 유해하다 아침 잔소리

by 써니

오늘 학교에서 발표수업이 있는 아들, 자료를 미리 올리지 못한 아이들은 어젯밤 늦게도 새벽에도 자료를 올리고 있었다. 학급 게시판에 게시물 알림 소리가 밤늦도록 심지어 새벽까지 울렸다. 어제 미리 자료를 올린 아들은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아침에야 친구들의 자료를 휴대폰으로 확인했다. 아들은 평소 친구들이 올린 자료를 읽고 좋아요 누르는 것에 진심이었다. 나는 아침에 휴대폰 보는 것을 자제하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아참 오늘 발표자료 보고 있었는데.'라며 억울한 얼굴이었다. '아는데 요즘 온라인 수업이다 뭐다 미디어 사용이 너무 많으니까 줄이자는 거지.'라며 아침 잔소리를 했다.


평소 일하는 가는 남편, 학교 가는 아들에게는 절대 싫은 소리 하지 않겠다는 생각인데 오늘은 아침에 잔소리가 터졌다. 평소에도 아들에게 지적할 때 한두 마디로 끝내는 편인데 오늘은 화내는 게 아니라 토의하는 거야 라며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말이 조금 길어졌다. 아들은 속상한 얼굴, 아주 억울한 얼굴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가 크거나 혼을 내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듣기 좋은 소리도 길어지면 짜증이 나는 법이다. 아들은 표정으로 그만 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까스로 잔소리를 멈추고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걷기 시작했다. 아마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내가 왜 그랬지? 나도 휴대폰 많이 보면서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보는 만큼 줄어든 아들과 나의 운동시간을 핑계 삼았다. 아니다. 아들이 안 보는데서 아들보다 더 휴대폰을 많이 보는 나를 생각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아들은 아침을 먹었다. 갑자기 아들이 피식 웃었다.

"아들 왜 웃어?"

"그냥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가?"

"허공에 집착하는 내가 웃기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침에 걷다가 보니까 인간은 참 허공에 집착하는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잖아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휴대폰 속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고, 게임도 그렇잖아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템을 위해 애쓴 내가 갑자기 웃겨요. 최초로 우주에 간 유리 가가린도 웃기고."

"유리 머시기가 왜?"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갔을 뿐 어차피 허공이잖아요. 그런데 최초의 우주인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한다는 게 웃기다는 거죠."


그러면서 아들은 양념장도 없이 김에 밥을 싸서 먹기 시작했다.

"아들 양념장을 올려서 먹어야지."

"양념장 맛에 집착하시네요. 역시 인간은 허공에 집착하는 존재예요."


아들은 마치 인생의 번뇌를 달관한 표정이었다. 아침부터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에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등교하기 전에 마음이 풀리기를 바라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아들 오늘 체육수업 있지? 비 안 오니까 운동장에서 하겠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다고 무슨 큰 의미가 있겠어요?"


아들은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뭔가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오늘 독감 예방접종 맞으러 가는 거 알지? 무서우면 내일 맞을까?"

"아니요. 그냥 오늘 맞으러 가요. 실체도 없는 주사를 무서워하는 인간도 참 웃기네요."

"주사는 실체가 있는 거잖아. 아픈 것도 사실이고."
"엄마 주사가 아픈 것은 잠깐인데 인간이 무서워하는 것은 실제보다 훨씬 크잖아요. 결국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사실 주사란 맞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맞기 전에 몇 시간씩 걱정하잖아요. 역시 인간은 허공에 집착하는 존재예요."

"그렇긴 해. 주사는 맞기 전이 가장 아프다는 말이 있으니까. 그래도 왜 그렇게 주사가 무서운지. 네 말대로 맞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들은 말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밥을 먹었다.


"아들 오늘은 학교 갔다 와서 샤워부터 하고 병원 가자. 주사 맞은 날은 샤워 못하니까."

"그럴게요. 엄마도 참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나 봐요."

"걱정이 아니라 준비?라고 해두자."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겠네요."


아들은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았다. 아침에 엄마가 잔소리 조금 아주 조금 했기로 이렇게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나는 아침부터 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역시 아침에는 좋은 말, 기분 좋은 말만 했어야 했다. 아무리 내 입장에서는 정말 어쩌다 한 번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아들에게 용돈 가방에 넣어줄 테니까 학교 끝나고 올 때 좋아하는 삼각김밥 사라고 했다. 아들은 시크하게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12살 아들은 어느 가을 아침 인생은 덧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 같았다. 역시 인생은 번뇌의 연속이라는 진리만 남긴 채 아들은 허무한 인사와 함께 학교에 갔다. 목구멍부터 가슴으로 찌르르 아파왔다. 아들이 걸어가는 등굣길, 그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12살 아들의 숨으로 뱉어질지 모르는 사는 게 뭘까? 하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이다. 아들에게 뭐든 다 하라고 하고 싶지만 세상이 또 그렇지 않아서 라는 변명이 궁색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