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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01. 2022

접시꽃은 잘못이 없다.

운전하면서 지나치는 길에 접시꽃이 활짝 피었다. 예쁘다.

나는 대부분의 꽃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이지만 들에, 길에 핀 새끼손톱보다 작은 풀꽃도 좋아한다. 장미를 보면 꽃잎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해 피어낸 것 같은 섬세함이 느껴져서 좋다. 작은 풀꽃을 보면 흙도 부족한 작은 공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피어낸 것이 소중하고 기특하다. 흔히들 호박꽃은 못생긴 꽃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호박꽃도 아름답다. 노랗고 부드러운 꽃잎을 보고 있으면 카스텔라 향이 날 것 같다. 꽃을 좋아해서인지 길에 난 풀들도 모두 소중하고 예쁘다. 그 풀들이 모두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나도 싫어하는 꽃이 있다면 바로 접시꽃이다. 어느 장소에서든 접시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소담하게 피었어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해서 꽃 사진을 자주 찍기도 하고 계절마다 만나는 꽃들, 심지어 벼꽃도 그냥 지나치지 않지만 접시꽃만은 예외다.


어린 시절 동네에 유독 접시꽃이 많았다. 서른 가구가 안 되는 마을, 담장에 접시꽃이 여름이면 색도 다양하게 고왔다. 왜 그 마을에서는 담장마다 접시꽃이었는지, 다른 마을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접시꽃은 예쁘다. 큰 꽃잎은 하늘하늘 고운 색깔, 작은 바람에도 가볍게 흔들릴 정도로 여린 꽃잎이다. 크게 화려하지 않지만 충분히 소담하고 사랑스럽다.


어린 시절 맞지 않으려고 밖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어두운 시골길, 나는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어느 집 담장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집 담장에는 여름이면 언제나 접시꽃이 많았다. 담을 따라 줄 맞추듯 핀 꽃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처럼 밤이 더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접시꽃과 함께 여름을 보냈다. 접시꽃은 나를 알았다. 매일 내가 얼마나 나쁜 마음으로 시간을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세상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던 내 마음을 접시꽃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접시꽃을 싫어한다. 지금도 접시꽃에 들킨 내 마음 때문에 접시꽃이 싫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되면 내가 또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는 접시꽃이 싫었다.


그 후로 30년 동안 나는 접시꽃에는 마음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접시꽃이 소담하게 핀 길을 지나치다 보니 시골 어느 집 담장에 피었던 그 꽃이 생각이 난다. 왜 그렇게 접시꽃을 많이 심었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낸다. 때가 되면 왜 그렇게 무심하게도 피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접시꽃은 잘못이 없다. 아직도 나를,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아서 내가 괜히 심통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수많은 밤에 내 옆을 지켜준 고마운 꽃에게 아직 고맙다고 말할 준비가 안된 내가 미워서 화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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