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반 회장 선거에 대한 가정통신문이 왔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에 회장을 한 후로 다시는 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회장의 권한은 없고 무게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들은 혹시 나갈 생각 있냐는 내 물음에 단칼에 '노'라고 답했다. 아들에게 회장이 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아들이 반 회장이 되기를 내심 바라기는 했다. 바로 반대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완장은 누가 채워줘도 거절하는 극내향적인 인물이다. 그런 내가 적극적으로 반대표가 되려고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구석진 자리에만 앉는 사람이었다. 강연을 들으러 가거나 모임에서도 질문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단톡에 답하거나 먼저 글을 남기는 일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그런 나도 나름 엄마라고 아들이 수업시간에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평소 극내향적, 음지에 사는 엄마를 보고 살았던 탓일까? 어릴 때는 회장선거에도 나가서 당당히 당선되던 아이가, 무대만 보이면 올라가서 춤을 추곤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공개수업에서도 어릴 때는 질문도 대답도 너무 많이 해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던 아들은 지금 선생님이 질문을 해도 답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아들의 그런 모습은 그대로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아들에게 선언을 했다. 엄마는 2023년을 적극적으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2023년을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면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내내 도서관 봉사만 하던 내가 반대표가 되기로 했다. 학부모 총회에 가면 반대표는 다들 기피하는 일이니 쉽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혹시 반 회장 엄마가 반대표가 되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반대표를 하려는 사람이 없으면 분위기상 회장 엄마가 반대표가 되는 것이 관례다. 그런 이유로 회장의 엄마는 총회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아들은 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찍은 학생이 회장이 됐다고 한다. 총회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반대표가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들아 회장이 되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은 알겠는데 엄마가 반대표가 못 될지도 모르겠어."
"왜요?"
"보통 반 회장의 엄마가 반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
"그럼 미리 얘기를 하죠. 알았으면 회장 선거 나갈걸."
아들의 말에 나는 이미 감동을 듬뿍 받고 말았다. 그렇게나 싫어하는 회장 선거에 엄마를 위해서 기꺼이 망설이지 않고 나갈걸 하고 후회해 주는 아들이라니. 하지만 나는 아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게 엄마라고 해도. 나는 아들에게 내심 쿨하게 말했다.
"아들아 반대표 문제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너의 일을 해. 엄마 때문에 억지로 회장이 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엄마가 반대표 되고 싶어 했는데 어떡해요?"
"그 문제는 엄마가 알아서 할게."
아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나는 총회날을 기다렸다. 반대표 선출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가정통신문 문자가 왔다. 반대표와 학년대표를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대표 선출이 어려우니까 미리 신청을 받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반대표와 학년 대표에 다 이름을 써서 제출했다.
총회날이 되었다. 총회가 끝나고 각 반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 끝에 반대표 선출의 시간이 되었다. 평소 워낙 반대표 선출이 어려웠던지 담임선생님은 반대표가 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부담 갖지 말라는 말씀을 길게 하셨다. 그리고 반대표를 원하시는 분 있으신지 묻자 옆에 있던 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역시나 회장 엄마라고 했다. 나는 회장 엄마에게 반대표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부대표를 뽑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없던 부대표라니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부대표가 되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꼭 반대표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미리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반대표와 부대표들이 다시 모여 회의를 하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학년대표 하겠다고 신청서 내셨죠?"
라고 말하는 분은 전체 학부모 회장님이었다.
"아~ 네."
"학년대표 하겠다는 분이 한 명 밖에 없어서 학년대표 해 주실 거죠?"
라고 묻는데 얼떨떨했다. 의도하지 않게 나는 1학년 대표와 아이의 반 부대표까지 겸직을 하게 되었다. 저녁에 나는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