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도 어느덧 1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그 말은 곧 나의 첫 학부모 임원활동 1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한 학기 동안 학부모 임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었다. 전화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다른 학부모들과의 전화통화가 가장 힘들었다. 그 외 소소한 불편들을 감내하더라도 학부모 임원활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먼저 학부모 임원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학교에 봉사활동은 많이 다니면서도 한 번도 임원으로 활동해 보지 않았을 때, 나는 그들이 시간이 많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학부모 임원들 중 대다수가 일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전업주부는 소수였다.
그들은 바쁜 와중에도 학교에서 열리는 회의나 캠페인, 그리고 자원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나는 학부모임원들은 학교에 불필요한 간섭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소위 치마바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편견 때문인지 총회 때 봤던 학부모임원들은 다들 똑 부러지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보였다. 그런데 1학기 동안 회의나 캠페인에서 본 그들은 선생님과 학교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최대한 도움이 되기 위해 뒤에서 애쓰는 분들이었다. 한때 나는 그들이 학부모회장이나 부회장 놀이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정말 받는 것 없이 노력봉사할 뿐 아무런 권력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과연 그분들과 함께 학부모 임원으로 있어도 될까 싶을 만큼 나의 부족함을 매번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학부모 회장님으로부터 긴급회의 소집이 있었다. 며칠 후에 있을 간담회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들은 내용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께서 심야괴담회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비가 오거나 시험을 잘 본 날 심야괴담회 보여달라고 선생님께 요구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아들은 무섭거나 잔인한 영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심야괴담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전혀 본 적이 없는 방송이다. 얼마 전에 한 선생님께서 심야괴담회를 보여줬는데 학교에서 심야괴담회 보여주지 말라는 전화를 교장선생님께 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교장선생님께서는 선생님들께 시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학부모회장님이 걱정스럽게 회의를 소집했다.
심야괴담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바로 교장선생님께 전화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평소 아들도 심야괴담회를 보는 시간이 싫다고 했기 때문에 비슷한 마음인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회의 중에 아이가 오죽했으면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했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다.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물론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는 당연히 학교에 전화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이 그렇게 전화를 할 정도였을까 생각하면 나는 아니라는 쪽이다. 이런 전화가 선생님들의 수업의 질을 높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의 수업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내 수업 내용이 교실밖에서 논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그 선생님이었다면 수치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내 수업 내용을 통제하고 간섭당하면서 선생님이 학생들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학교 선생님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학교 선생님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아이가 선생님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때도 존경은 안 하더라도 존중은 하라고 이야기해 준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선생님께 시정조치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분도 있을 것이다. 마치 학교에 학부모의 권리, 학생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에게도 수업시간에 대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사용할 수 있는 훈육방법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벌점인데 학생들 중에 벌점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말 한마디에도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성추행이라고 하는 학생이 정말 학교에는 존재한다. 학생의 권리를 위해 선생님의 권리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의미가 없다. 같은 이유로 선생님이 없는 학교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심야괴담회가 무서운 프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라면 무섭지 않은 영상이었으면 괜찮았을까? 꼭 그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수업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교장실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학교를, 선생님을 자신들의 민원을 처리해 주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내가 학부모 임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그리고 학부모 임원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선생님의 교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아이의 불편을 매번 해결해 주라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를 알고 배려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그저 지켜보고 믿어줘야 한다. 몸도 마음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선생님과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전화보다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