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퇴근 시간은 오후 5시다. 오후 5시라고 쓰면서 나는 저녁 5시라고 써야 하는 고민 했다. 5시는 오후인지 저녁인지 정하기 애매한 시간이다. 그래도 나에게 5시가 늦은 오후 같은 느낌이라 오후라고 쓴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중1 아들은 이 시간에 항상 집에 있다. 어김없이 오후 5시면 남편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과 나는 언제나처럼 현관 중문 앞에서 남편을 맞는다. 예전처럼 90도 까지는 아니더라고 45도 인사를 하면서.
아들은 남편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들이 찾는 것은 남편이 도서관에서 빌려왔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특별히 정한 책은 아니다. 남편은 보통 퇴근하면서 도서관에 들렀다 오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남편의 가방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항상 많은 편이다. 아들은 남편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5살 아이가 사탕바구니에서 사탕을 꺼내 먹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 남편은 책을 빌릴 때 보통 5권 이상을 빌린다. 그림책에서부터 소설, 인문서적까지 다양하다. 아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림책과 소설이다.
아들은 가방에서 꺼낸 책을 쉬지 않고 단숨에 읽는다. 그림책을 먼저 읽고, 다음이 분량이 조금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 아들은 조용하다. 마치 아들이 집에 없는 것처럼 책에 빠져든다. 이런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고 기분이 좋다. 내가 준비한 간식을 먹으면서 아들은 오물오물 책을 읽는다. 그 옆에서 남편도 방금 빌려온 따끈한 책을 읽는다.
보통 책을 사는 일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책을 빌려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도 한때는 서점에서 책을 사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사서 모은 책들을 보물처럼 생각했다. 조금의 흠집도, 누군가 빌려가서 꿀꺽하는 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아둔 책들은 이사를 하면서 커다란 짐이 되고, 집에서 먼지받이가 되었다. 세월이 지나 누렇게 뜬 책들은 다시 펼쳐보기도 싫었다. 시간이 지난 책들은 버려졌다. 낡고 먼지냄새가 나는 것이 싫어서 버려진 책들이 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집에 있을 때 꼴도 보기 싫던 책들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많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갈까? 이제는 도서관에서 기부도 받지 않는 저런 책들이 안락사를 기다리는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버려지는 책을 보는 것이 싫어서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나 도서관은 나에게 좋은 책과 새로운 책을 내어준다. 도서관에는 책이 넘쳐난다. 매일 새로운 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책들을 가방에 담아 오는 아빠, 그리고 그 아빠를 기다리는 아들. 아들에게 아빠의 가방은 작은 도서관이 된다. 그래서 아들은 아빠의 퇴근을 기다린다. 마치 뽑기 사탕처럼 어떤 책이 나올지 모르는 신비한 도서관을 중1 아들은 매일 기다린다.